시대가 요청하는 원본성에 충실하고 안정감 있는 번역
판본 상이한 번역 고증, 번역어도 원점에서 재검토
『정신현상학』은 1980년대 후반에 처음 완역된 이래로 헤겔 철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시대적 상황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학문적 담론이 축적되어 이러한 변화에 걸맞은 번역서가 요청되고 있는 실정이다. 헤겔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안심하고 인용할 수 있는 새로운 번역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옮긴이 김준수 교수(부산대는 이러한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번역을 위해 기존의 번역어부터 원점에서 재검토하였으며 판본을 달리하는 기존 번역의 대본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구절이나 문장을 주석에서 일일이 점검하였다.
『정신현상학』 원문의 복잡함과 난삽함 그리고 구조의 애매함은 익히 알려져 있다. 더욱이 시간에 좇기며 집필이 이루어지고 출판 과정에서 제목과 차례가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이 겹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한국어판은 원저작의 형식과 구조를 때로는 그것이 불완전한 경우에도 반영하였는데, 이는 “헤겔 역시 독자의 사유를 뒤흔들고 일깨우기 위해서 구문의 난해함을 의도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번역은 헤겔 철학의 해석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데, 곧 행위자 관점의 내재적 시각에서 텍스트를 번역함으로써 절대적 정신의 구성 과정을 부각하는 데에 역점을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