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왜 자기과시를 위한 도덕은 위험한가 4
제1장 ‘정치적 올바름’의 소통을 위하여
‘정치적 올바름’이 촉발한 ‘문화 전쟁’ 17 | PC는 ‘나치돌격대의 사상 통제 운동’인가 21 | PC의 연구 주제와 언론 보도 주제의 다양성 25 | ‘자유, 위선, 계급’이라는 PC의 3대 쟁점 28 | 자유 :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갈등 32 | “자유는 건전한 절제를 전제로 한다” 37 | 위선 : ‘말과 행동의 괴리’로 인한 갈등 40 | 고소득고학력 좌파가 주도하는 PC 45 | 계급 : ‘정체성 정치’와 ‘계급 정치’의 갈등 48 | PC를 통제하는 브레이크는 여론이다 52 |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PC 56
제2장 왜 싸이의 ‘흠뻑쇼’ 논쟁이 뜨거웠는가
‘외눈박이’, ‘성적 수치심’, ‘~린이’ 표현을 쓰지 마라 63 | 배우 이엘과 작가 이선옥의 논쟁 67 | 『경향신문』과 『중앙일보』의 시각 차이 70 | ‘도덕적 우월감’ 없는 문제 제기는 가능한가 72 | “슬랙티비즘은 사회 참여 첫걸음이다” 75 | 좌파 지식인들의 PC 비판 78 | PC 언어가 잔혹한 현실을 은폐한다면 80
제3장 ‘정치적 올바름’의 생명은 겸손이다
‘정치적 올바름’, 겸손하면 안 되나 85 | 좌파이자 동성애자인 사람이 왜 PC를 반대하나 88 | “파멸하지 않으려면 이분법 광기를 멈춰야 한다” 91 | 지금까지 즐겨온 농담을 할 자유의 침해 93 | ‘장애우’는 ‘누군가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망언’인가 97
제4장 SNS가 규제하는 ‘유치원 국가’가 좋은가
‘정치적 올바름’의 변질 과정 105 | ‘안전’의 ‘은밀한 개념 확장’ 108 | 소셜미디어의 포로가 된 i세대 110 | “어린이에 해를 끼치고 분열을 조장하는 페이스북” 112 | 소셜미디어의 ‘가해자 지목 문화’ 116 | “학생들의 나약함을 신성
‘정치적 올바름’은 항상 올바른가?
왜 자기과시를 위한 도덕은 위험한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어 사용이나 활동에 저항해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운동이나 철학을 가리킨다. 이 사회적 약자에는 여성, 장애인, 빈곤층, 흑인 등이 포함되며, 이들에 대한 언어적 차별과 모욕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자신이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무대로 만들어 “누가 더 도덕과 정의에 충실한 사람인가?”를 겨루는 전쟁터가 되었다. 이들은 자신을 도덕과 정의의 화신인 양 여길 수 있게끔 그런 담론을 끊임없이 구사한다. 이는 ‘정치적 양극화’의 동력이 된다. 정치적 쟁점이 도덕과 정의의 문제가 될수록 사람들이 그 쟁점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도덕과 정의는 얼른 듣기에는 아름답지만,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질 정도로 과장되면 끝없는 분란의 씨앗이 되고 만다.
그러니 자기과시를 위한 도덕이 위험하듯이 자기과시를 위한 PC도 위험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념적 순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타협을 거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음이 잘 맞는 진보주의자들과 수다를 떠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그들이 자신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군가 도덕적으로 시간당 최저임금이 15달러여야 한다고 주장하면,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20달러로 제도화하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 신경을 쓰는 것 아니냐고 할 것이고, 이런 식의 논의가 진행되다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짐작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누가 더 경쟁 집단의 견해를 공격하고 경멸하는 데에 유능한가?”를 겨루는 경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강준만의 『정치적 올바름』에서는 PC를 둘러싼 찬반 논쟁과 논란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보다는 양쪽의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