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설인가
수사적 논변의 호소력으로 철학을 말하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다. 그래서 철학은 중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만큼 어렵다. 그렇다고 알기 쉽게 풀어서 철학을 전달하면, 그 중요성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철학의 딜레마를 고민한 사람은 현대의 철학자뿐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도 이와 같은 고민을 했고, 연설의 형태로 자신의 철학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스토아 철학의 역설』이다.
작중 화자인 키케로는 당시 일반의 견해에 반하는 여섯 가지 역설을 설명하기에 앞서 카토(Marcus Porcius Cato Uticensis, 기원전 95~46년의 원로원 연설을 격찬한다. 카토는 당시 관행에 어울리지 않게 철학적 주제들을 연설에 끌어들여, 특히 엄격한 논리적 추론을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을 수사적 논변의 형태로 펼치며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키케로는 그의 연설을 통해 “연설에 의해 인정할 만하게 만들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는 견해는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왜 여섯 가지 역설인가
논변을 뒷받침하는 엄격한 논리로 스토아 철학을 말하다
키케로가 다루는 역설은 “오직 훌륭한 것만이 좋은 것이다”, “덕은 행복을 위해 자족적인 것이다”, “죄들도 동등하고 올바른 행위들도 동등하다”, “어리석은 자는 모두 미쳐 있다”, “오직 현자만이 자유롭고, 모든 어리석은 자는 노예다”, “오직 현자만이 부자이다” 여섯 가지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이 연설이 내 생각이 아니라 스토아주의자들의 논의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기지 않을까 염려됩니다”라고 했지만, 역설들 자체는 초기 스토아 학파, 특히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가 “내 생각을 말할 것”이라고 한 점은 역설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대중을 설득하는 자신의 논변이 독창적이라는 의미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가 수사적 논변, 즉 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