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며
그 많던 판자촌은 어디로 갔나?
1부. 판자촌을 아시나요?
1장 집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주택문제
남의 땅에 집 짓기
판자촌의 전형이 만들어지다: 붉은색 시멘트 기와, 미장한 블록 벽
새로 들어선 무허가주택
2장 사람
판자촌 사람들
판자촌의 개혁가들
3장 사건
물, 불, 산사태
와우아파트 붕괴
광주대단지사건
투쟁하는 철거민
2부. 집, 가난 그리고 개발
4장 집과 가난
가난한 집의 역사
5장 판자촌과 합동재개발
판자촌을 중산층용 아파트 단지로
6장 뉴타운과 도시재생
판자촌 이후의 재개발
뉴타운에서 도시재생으로
3부. 판자촌 이후의 판자촌
7장 세계의 판자촌
어디나 ‘판자촌’은 있다
8장 판자촌이 남긴 숙제
판자촌에 대한 국제사회의 촉구
판자촌이 남긴 숙제
보태는 글
판자촌과 부동산 정책의 경험
주
참고문헌
사진 출처
판자촌 철거의 역사,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판자촌 철거의 역사는 도심 재개발의 역사이기도 하다. ‘대전이나 대구 규모의 초대도시로 구상한 도시’인 광주대단지 개발, 시민아파트 건설, 합동재개발사업, 뉴타운사업 등 책에는 도심 재개발의 역사가 자세히 담겨 있다. 대규모로 재개발이 진행될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집을 잃고 다른 곳으로 흩어져야만 했다. 시민아파트 등 그들을 위해 짓는다는 집에 그들은 결코 들어가 살 수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또 다른 나쁜 주거지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 진행됐던 합동재개발사업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합동재개발사업은 주민(가옥주과 건설업체가 각각 조합원과 참여 조합원이 되어 ‘합동’으로 재개발사업을 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합동재개발사업은 1983년 시범사업을 시작한 이후 빠른 속도로 서울 전역의 판자촌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합동재개발사업의 충격은 컸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서울 시민의 10% 이상이 거주하던 판자촌이 10년 만에 2~3%가 사는 곳으로 줄어들었다. 줄잡아 70만 명 이상이 판자촌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구임대주택,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쪽방 등이 판자촌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더군다나 이 연쇄 이동으로 다세대·다가구주택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사람들마저 임대료 인상의 폭탄을 맞았다. 판자촌 주민의 관점에서 보면 합동재개발사업은 자신들의 주거지를 상위계층에게 제공하는 사업일 뿐이었다. 즉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사업이었다. 특히 판자촌 세입자들을 위한 대책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욱 잔혹했다.
합동재개발사업은 한국사회에 나쁜 선례를 많이 만들었다. 용적률 증가에 따른 개발이익을 사유재산처럼 소유자가 독식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정부는 도시 개선을 위해 재정이나 자원을 투입하지 않아도 될 명분을 얻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그저 개발 규제만 완화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시장 중심 규제완화론이 재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