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하박국의 절망에 찬 기도는 그가 예언하던 당시 상황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유다의 마지막 등불 요시야가 죽고 완전히 무질서와 혼란에 빠져 있던 시기였습니다. 왕도 애굽 왕이나 바벨론 왕이 제멋대로 세웠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서는 다른 선지서들과 달리 어느 왕 때부터 어느 왕 때까지 예언했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유다에는 진정한 의미의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의 죽음과 함께 유다에는 왕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유다라는 거대한 배는 서서히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그처럼 절망적이고 긴급한 시기에 말씀을 전한 선지자였습니다.
_13쪽, ‘하나님은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그토록 잔인한 바벨론의 손에 맡기시는 것에 항의했습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1:14.
바벨론이 얼마나 사납기에 하박국이 이처럼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는 것일까요? 바벨론은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물고기 취급하고 곤충 취급했습니다. 물고기가 수백 마리 죽었다고 통곡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루살이나 개미가 수천 마리 죽었다고 애곡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벨론은 그런 물고기나 하루살이를 죽이듯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_66, 67쪽, ‘선지자의 질문’
하박국은 예루살렘이 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성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망해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한편으로는 예루살렘을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는 마치 한 손에는 창을 들고 한 손으로는 기도하는 사람처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번지점프를 할 때 사람의 몸을 묶는 밧줄과 같았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제 곧 절벽 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