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폴란드의 포즈난에서 태어난 바우만은 전체주의적 공포가 반영된 이곳에서의 삶을 되돌아본다. 스탈린 전후 폴란드의 정보 장교로, 1953년 아버지의 ‘서방’과의 접촉으로 인해 해고되었고 마침내 1968년 반유대주의 ‘숙청’ 과정에서 바르샤바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강제 추방되었다. 이스라엘에 잠시 머물던 바우만은 1971년에 영국 리즈 대학교에서 자리를 제안 받았다. 여기서 그는 <모더니즘과 홀로코스트>처럼 우리시대의 고전이 된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이 대담집은 바우만이 죽기 직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삶에서 죽음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요컨대 바우만은 계몽적인 언어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려는 관심이 실패했다고 보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톤이 우울과 몽상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맑스의 11번째 테제를 인용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세계를 해석하기보다는 세계를 ‘변화’시키기를 원했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삶의 마지막에도 “세상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바우만은 모더니즘의 잔해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페허 위에서 여전히 희망의 깃발을 휘두르고 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회학자이자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무엇보다도 덧없는 근대성(Fleeting Modernity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다. 많은 이들에게 ‘세계화 반대자들의 머리’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언자’로 묘사된 학자는 인문학 세계에서 외따로 떨어진 섬과 같은 존재였다.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능력을 잊어버리거나 도덕적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 대해 그 자신의 삶을 날줄로 그리고 타인들의 삶을 씨줄로 해서 의미의 그물망을 만든다.
그는 하프너와의 대화에서 자본가와 노동조합(산업 노동자 간의 고정된 관계가 사라진 지 오래인 오늘날의 종속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도 주저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모호한 추상적인 질문보다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