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와 통제를 거부한 자유주의 건축가
잔카를로 데 카를로는 1919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2005년 생을 마감한 건축가로, 영국 왕립 건축학회의 골드메달을 수상한 자유주의 건축의 대표적 인물이다. 2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시대엔 선박 엔지니어이자 레지스탕스로, 전후엔 건축가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며 다이나믹한 삶을 이어간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한다. “대화의 방향을 어느 한쪽으로 정해 놓지 말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실은 제가 생각할 때나 설계할 때도 이런 방식을 따르니까요.” 진정한 자유주의자였던 데 카를로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이념은 물론 일상적인 행동과 언어사용에서도 일관된 면모를 보인다.
어디서나 이방인이었던 유년기
어릴 적 어느 건물 통로에서 살쾡이를 마주치는 바람에 도망칠 공간을 찾던 경험으로부터 3차원의 공간을 지각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제노바와 리보르노,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튀니지로 거주지를 옮기며 여행자와 같은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를 키워준 외할아버지가 철로 감시원이었던 덕분에 그는 일찍이 튀니지 곳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 다양한 지역의 건축물을 접하며 어디서나 이방인으로 취급되던 경험, 튀니지에서 아랍인들의 베일에 싸인 듯한 생활양식을 접하고 느낀 강렬한 인상은 평생토록 그가 당대의 흐름이나 특정 학파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 자양분이 되었다.
파시즘에 온몸으로 맞선 아나키스트
파시즘의 물결이 유럽을 뒤덮던 시기에 그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며 공산주의에 맞섰다. 반파시즘 운동권의 한가운데서 언제든 붙잡혀 죽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숨어다니던 때에도 그의 삶은 풍요로웠다. 이 시기에 그는 아내 줄리아나를 만났고, 변장을 하고 거리를 배회하면서 친구들과 은밀한 회합을 가지던, 낭만과 위험이 뒤섞인 청년기를 보냈다. 때로 연행되거나 시민들의 냉대를 받으면서도 그는 파르티잔으로서 활동을 이어나갔고, 산속에 숨어 지낼 때 르 코르뷔지에의 도면을 필사하며, 동지들에게 건축 강의를 이어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