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더 잘 읽는 방법
조선 후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1. 어떤 고난도 나를 막진 못해_허균
조선의 선비라면 유배 정도는 다녀와야지 |
장독이나 덮을 정도의 하찮은 글이라고? | 여섯 번이나 파직을 당하다 |
카메라로 찍어 낸 듯한 기억력|《홍길동전》으로 혁명을 꿈꾸다
[역사 쏙 예술, 예술 쏙 역사_허균이 엮은 누나의 책 《난설헌집》]
2. 시련이 있으면 극복도 있는 법_윤선도
파란만장한 삶에서 이뤄낸 아름다움 | 네 번의 유배 |
임금에게도 할 말은 하는 청년|사람이 자리를 만든다
[역사 쏙 예술, 예술 쏙 역사_자연과 친구가 된 시 <오우가>]
3. 어머니를 위해 소설을 쓰다_김만중
고기 맛을 잊을 정도의 뛰어난 문장력|유배지에서 탄생한 베스트셀러|
숙종이 읽으면 뜨끔할 《사씨남정기》|이웃집 책을 손수 베껴서 가르친 어머니|
아홉 번이나 병조판서를 거절하다
[역사 쏙 예술, 예술 쏙 역사_사씨가 남쪽으로 간 까닭]
4. 유배지에서 다시 태어난 서체의 달인_이광사
51세에 한 살이 된 사람|조선의 서체, 동국진체를 완성하다|
서예 DNA가 핏줄에 흐르는 왕족의 후예|26세, 폐족이 되다|
미친 초서를 쓰는 글씨 맛집|조선 최고의 갓생러
[역사 쏙 예술, 예술 쏙 역사_신윤복의 아버지가 그린 이광사의 초상화]
5. 철없는 스타에서 진정한 예술가로_김정희
유배지에서 ‘멋’대로 쓴 글씨, 추사체|조선판 자가 격리에 처하다|
<세한도>에 담긴 감동 실화|떡잎부터 달랐던 조선의 멀티플레이어|
1,000자루의 붓이 몽당붓이 될 때까지
[역사 쏙 예술, 예술 쏙 역사_붕당 정치]
6. 쓰는 자만이 살아남는다_정약용
호모 라이터스|정조가 무너졌다, 유배가 시작됐다|
우리는 깐부잖아, 정조와 정약용의 만남|편지는 사랑을 싣고|100년 후를 기다리겠노라
[역사 쏙 예술, 예술 쏙 역사_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 사건]
7. 그림만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_조희룡
그림은 내 영혼의 탈출
“유배, 영감의 원천이 되다”
예술이 더 가까워지는 유배 뒷이야기
7인의 인물이 활동했던 조선 중·후기는 붕당 정치로 인해 정국이 혼란하던 시기였다. 민생 안정과 국가의 이익보다는 오로지 자기 당의 권세만을 위한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7인은 소신 있게 자기 목소리를 냈고, 그 결과 유배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고 능력에 따라 인정받는 세상, 약자도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을 외쳤다. 그뿐만 아니라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을 고양하고 문화·교양의 발전에 힘쓴 진정한 인본주의자였다. 그들의 사상은 다양한 저서와 예술 작품으로 남아 후대에까지 전해지는 귀한 유산이 되었다.
각 인물의 삶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면, 극한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았던 ‘갓생러’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김정희는 벼루 10개를 구멍 내고 1,000자루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어 가면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조선 시대 모든 매화 작품을 통틀어 으뜸으로 꼽히는 조희룡의 매화 그림도 유배지에서 탄생한 것이다. 7인 모두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일정한 성취를 이룰 때까지 밀고 나아갔다, 비록 외딴곳에 갇힌 신세였지만, 자신만의 예술 세계에서 긍정과 기쁨의 에너지를 얻었다. 이 7인의 인물이 각자 어떤 연유로 유배당했으며, 유배지에서는 어떻게 생활했는지 알게 되면 그들의 예술 세계를 좀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슬플 때 우리를 찾아온다
청소년이 유배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
기약 없이 유배지에 갇혀 있어야만 했던 7인의 상황은,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받아야 했던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당연하게 여겼던 자유를 박탈당한 지난 2년여의 세월은 많은 사람에게 혼란과 무기력을 가져왔다. 이제는 회복해야 할 때다. 저자 김영선은 “우주의 역사를 생각하면 인간의 생애는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유배 같은 나쁜 상황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