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씨 하나는 계속 타오르게 해.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아무리 숨어 있을지라도.” 소설 『더 로드(The Road』의 한 대목이 그에게 끝없이 험난한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걷게 했다.
“약한 자 힘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찬송가의 한 구절을 읊조리며 그는 회계 장부에 없는 노동자들의 목숨값을 헤아렸다.
“너희가 침묵하면 돌들이 일어나서 말하리라!” 『누가복음』의 한 대목이 세상의 돌을 맞으면서도 그가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였다.
김경율은 ‘뜨거운 감자’다. 1980년 5월 광주를 초등학생의 눈으로 목격했고, 1987년 민주항쟁을 재수생으로 거리에서 맞았으며,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을 거쳐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 단체 참여연대에서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위해 싸운 것이 그의 전반기 생이었다. 밥벌이로 삼은 회계사라는 직업으로 인해 수많은 진보적 시민 단체에서 감사로 일했고, 쌍용자동차 해고 무효 소송에서 1심 패소한 재판을 회계 감사 조서를 분석해 2심에서 승소로 이끌었다. 재벌 개혁을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현대 건설 회계 감사 부실, 삼성상용차 분식 회계 등을 공론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김경율은 ‘노빠꾸’다. 소위 ‘조국 사태’가 터지고 2019년 9월 29일 새벽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기사화되면서 김경율의 삶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국가에 대한 자율적 비판과 저항이라는 시민운동의 본령에 대한 문제 제기가 묵살되는 과정에서 그는 진영 논리에 매몰된 시민 단체의 위선을 비판하며 20년 동안 몸담았던 참여연대를 떠났다. 강양구·권경애·서민·진중권 등과 더불어 이른바 ‘조국 흑서’인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펴내면서 졸지에 진보 진영 내 균열의 중심이 되어버렸지만, 그는 싸움을 멈추는 대신 사모 펀드 사기&mid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