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국물이 튀김옷을 파고드는 동안
히어로였던 네가 내 안에서 무너졌다
어느 날, 전학생이 왔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그룹에도 낄 수 없던 ‘나’에게 전학생은 단비 같은 존재. 슬쩍 말을 걸어 보았는데 이 전학생, 심상치 않다. 사나우면서 수줍어 보이는 이중적인 매력. 그때부터 둘은 학교가 끝나면 도장 찍듯 단골 떡볶이집에 들락거리고 용돈이 없는 전학생 대신 용돈 쓸 데가 없는 내가 매번 떡볶이를 산다. 나는 생색내지 않고, 전학생은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전학생의 모습은 뻔뻔함보다 당당함에 가깝고, 지금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며 일갈하는 모습은, 그것이 학원을 빠지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일에 쓰였을지라도 영웅적이다.
빨간 떡볶이 국물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떡에서 스며 나온 뽀얀 물이 국물을 핑크색
으로 물들인다. 바다에서 오징어를 낚아 올리듯 빨간 범벅에서 오징어튀김을 찾아 꼬챙이로 콕! 찍었는데 어? 이상하다. 오징어튀김 속에 오징어가 없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의 결혼식장에서
기념사진이 되어 주었다
“너 혹시 튀김옷 없는 오징어 먹었어?” “무슨 소리야. 나 안 먹었거든?”
어긋남의 시작은 사소한 순간. 삐끗은 떡볶이집에서 시작하여 전학생의 불량한 남자친구에게로 이어진다. 동경하던 친구의 이면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 나는 고민만 하다 감정을 표출할 타이밍을 놓친다. 감정을 묻은 채 자주 만났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결혼식장에서 기념사진이 되어 주고서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부터 내게 전화가 걸려 온다. 만약 그때 제대로 화낼 수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친구일까?
떡볶이와 오징어와 히어로에 얽힌
너와 나의 열여섯에 대한 이야기
설레고 좋은 마음, 유치하고 치사한 마음, 좀스럽고 쪼잔하지만 센 척하고도 싶은 마음. 화내고 싶다가도 수그리는 마음. 이런 마음들로 엮인 솔직한 이야기에, 먹그림 오징어들이 한 축을 담당하고 나선다. 글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