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역사로 바라본 사리신앙
1장 | 사리에 대하여
사리란 무엇일까, 사리의 의미와 사리 신앙의 다양한 모습들
불사리의 종류:진신 사리와 법신 사리
사리 신앙으로 나타난 탑돌이
2장 | 탑과 사리 신앙
탑을 세우는 공덕과 불정골 이야기
법신 사리로 봉안된 다라니경과 보협인경
사리 신앙에 영향 받은 불상·불화의 사리 봉안
사리 신앙의 역사가 담긴 사리봉안기
3장 | 우리나라 사리 신앙의 역사
삼국시대 사리 신앙
고구려 사리 신앙의 흔적이 담긴 금동 판
백제 사리 신앙의 대중화 과정
신라의 사리 신앙
통일신라시대 사리 신앙
통일신라 사리 신앙 개관
통일신라시대 다라니 신앙
사리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리 봉안의 사례들
고려시대 사리 신앙
고려 왕실에서 150년 이어진 불아 사리와의 인연, 불아전
고려시대 분分사리 영험의 이야기들
고려시대 불사리 신앙의 몇 가지 예들
신라 자장 스님이 봉안한 불사리의 고려시대 후일담
조선시대 사리 신앙
불사리 신앙의 모범이 되었던 태조
조선 초기 왕실의 사리 신앙
조선시대 사리 신앙의 자취를 전하는 사리탑비
통도사 금강계단 불사리가 돌아온 길고 긴 여정
불사리 봉안의 의미를 설파한 서산대사의 보현사 석가여래 사리기
법주사 팔상전의 사리
두 왕이 봉안한 봉인사 불사리
정암사 수마노탑에 전하는 불사리 봉안의 이적
정암사 수마노탑에 투영된 사리 신앙의 한 모습, 〈갈천산 정암도〉
이적異蹟을 보인 낙산사 공중사리탑
충청도와 전라도를 오갔던 안심사 불사리
근대의 사리 신앙-신문 기사에 실린 불사리에 관한 일화들
근대에 전달된 불골 사리, 1909년
일본에서 돌아온 불국사 사리탑, 1933년
불사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다
괴산에서 돌아온 불사리, 1933년
4장 | 동아시아 사리 신앙
아시아에 사리 신앙을 전한 아소카왕
인도 사리 신앙 대중화 기반을 마련한 아소카왕
중국 사리 신앙 역사에 스민 아소카왕 이야기
우리나라에 전하
사리 신앙을 마주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역사이야기
우리나라 사리 신앙의 역사가 1,500년이나 된다. 이 긴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피면 좀 더 일목요연해질 텐데, 개별 사례 연구는 세밀하게 이뤄졌으나 정작 필요한 통사적(通史的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 <사리>는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리에 관련한 역사의 흐름을 정리하다보니 사리 신앙만이 아니라 사리를 마주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새로운 형태의 역사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불멸의 존재, 숭앙으로 다시 태어나다
현대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탈종교의 시대라고 할 만큼 종교심이 옅어진 오늘날에야 유골에 정신적 가치를 투영하는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람의 정신은 남겨진 유골에 깃든다는 관념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일종의 풍속이었다.
이 같은 믿음 속에는 진신 사리는 석가모니의 분신이나 다름없기에 제자와 신도들은 책이 없어도 사리를 대하며 스승의 가르침대로 수행에 정진하며 의심 없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 성인을 추모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그가 죽은 뒤에도 그가 남긴 유골을 기리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그를 불멸의 존재로 생각해 집단적으로 숭앙(崇仰의 풍조로까지 이어졌던 현상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다. 서양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서 종교적 인물뿐만 아니라 각 방면에 유명한 사람들의 유골을 ‘수집(蒐集’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했다. 예를 들면 17세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의 지골(指骨과 치아가 지금 이탈리아 피렌체 갈릴레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을 정도이다.
석가모니가 살아 있었을 때는 가르침을 직접 들을 수 있었지만, 열반한 뒤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고승 석학들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토대로 해서 불교 이론을 집대성한 불교 경전을 펴냄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지만 불경은 석가모니 입멸 후 100년이 지나서야 편찬되기 시작했으니, 그동안 공백은 어떻게 메울 수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