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존 퍼킨스(John Perkins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 정의”란 무엇인가?
1부 여호와인가 아니면 이세벨인가?
: 사회 정의와 경배에 관한 세 가지 질문
1장. 하나님에 관한 질문
: 사회 정의에 관한 우리의 시각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가?
/ 에디의 이야기
2장. 형상에 관한 질문
: 사회 정의에 관한 우리의 시각은 모든 사람이 외모나 피부색, 성별이나 신분에 관계 없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 월트의 이야기
3장. 우상에 관한 질문
: 사회 정의에 관한 우리의 시각은 내 자신과 국가, 혹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으로부터 거짓된 신을 만들어내는가?
/ 베켓의 이야기
2부 연합인가 아니면 소란인가?
: 사회 정의와 공동체에 관한 세 가지 질문
4장. 집단에 관한 질문
: 사회 정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아담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정체성보다 집단의 정체성을 더욱 중요하게 받아들이는가?
/ 에드윈의 이야기
5장. 분열에 관한 질문
: 사회 정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분열적인 선전을 수용하는가?
/ 써레쉬의 이야기
6장. 열매에 관한 질문
: 사회 정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사랑과 화평, 인내 대신에 의심과 분열, 분노를 받아들이는가?
/ 미셸의 이야기
3부 죄인인가 아니면 제도인가?
: 사회 정의와 구원에 관한 세 가지 질문
7장. 불균형에 관한 질문
: 사회 정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비난의 여지 없는 사실보다 비난할 만한 이야기를 더 선호하는가?
/ 새뮤얼의 이야기
8장. 피부색에 관한 질문
: 사회 정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인종적 갈등을 부추기는가?
/ 모니크의 이야기
9장. 복음에 관한 질문
: 사회 정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역사상 가장 기쁜 소식을 왜곡하는가?
/ 오조의 이야기
4부 진리인가 아니면 집단적 사고인가?
10장. 터널 시야에
본문에서
“나는 21세기 교회가 직면해 있는 가장 거대하고 뚜렷한 시대상을 보여주는 논란거리들 중에 하나가 바로 ‘사회 정의’(social justice라고 확신한다. 20세기에는 사회학 수업을 청강하거나 지역 사회의 활동 단체에서 주관하는 집회에 참석해야 사회 정의라는 표현을 들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커피숍에서는 물론, 음료수나 신발, 혹은 면도 크림 광고에서, 패스트푸드 상점이나 축구 경기장에서, 인터넷 검색창과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유치원 교육 과정이나 트위터 글귀에서, 전국 단위의 방송매체 뿐만 아니라 교회의 강대상까지 모든 곳에서 이 말을 들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진보로 보아야 할 지, 아니면 해로운 일로 보아야 할지는 사회 정의에 관한 논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다음의 질문들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인간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제 세상은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21세기의 사회 정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현시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난 2천 년의 교회 역사에서 우리들이 마주해온 모든 커다란 질문들을 함께 직면하는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사안을 보다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문 중에서
“과연 제도적인 불의라는 것이 있을까? 물론이다. 전쟁 이전, 즉 미국의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노예 제도나 전후의 짐 크로우 법 등을 제도적인 불의 외에 달리 무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 밖에도 아파르트헤이트나 카스트 제도, 혹은 인신매매 등은 제도적 불의가 아니고서야 다른 어떤 말로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성경은 “율례를 빙자하고 재난을 꾸미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즉 인간의 법전 안에 하나님의 법에 대한 불순종을 끼워 넣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말씀이다.”
-6장에서
“악한 인간이 곧 악한 법을 만든다. 우리의 죄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