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사 46:10
성경으로만 요한계시록을 해석해야겠다는 갈망을 준 말씀이다. 인간을 비롯한 피조 세계의 종말의 시간에 대하여는 창세기부터 예고된 것이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첫째 날과 둘째 날의 창조가 그것이다. 첫째 날의 창조는 빛이다. 이 빛은 넷째 날의 가시적 빛과 다른 비가시적인 진리의 빛을 의미한다. 고전 4:6절이 근거이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둘째 날의 창조는 심판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슬픔이 근거이다. 이는 창 1:6-8절에 나타나는 궁창의 창조 기사에서 드러나며 여섯 날의 창조 가운데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기쁨에 대한 표현이 제외된 데서 하나님의 슬픔이 전제된다. 왜 하나님의 기쁨에 대한 표현이 없을까?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홍수 심판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창 7:11-12절이 증거 한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 7:11-12
‘깊음의 샘’은, 땅 아래의 물을,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쏟아지는 물’은 궁창 위의 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원과 심판을 첫째 날과 둘째 날에 위치시킨 창세기의 기록이 이 시대 곧 종말의 시간이 임박한 이 세대와 시대를 향해 부르짖는 소리에 대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은 많은 물소리와 같이 들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자는 여전히 귀를 닫고 자신을 위한 일에 함몰되어 살다가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인생이 될 것이다. 이 경고가 필자의 책이 주는 소리이다.
나이 마흔에 신학생이 되고 성경을 연구하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