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1장 오스만국가의초창기
더 살펴보기 / 변방의 영웅 서사시
2장 고전 시대(1450~1550년대
더 살펴보기 / 이베리아 유대인의 오스만 제국 이주
3장 분권화의 시대(17~18세기
더 살펴보기 / 카드자델리 운동
4장 동방 문제의 대두
더 살펴보기 / 퀴췩 카이나르자 조약
5장 탄지마트의 국가 개조
더 살펴보기 / 탄지마트 시대의 개혁 관료
6장 압뒬하미드 시기의 무슬림 내셔널리즘
더 살펴보기 / 선교사들의 관점 헨리 해리스제섭
7장 20세기 초 청년 투르크 집권기
더 살펴보기 /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와 종교
맺음말
주석
참고 문헌
더 읽을거리
용어 사전
■ 유럽 제국주의는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기독교인 갈등을 어떻게 격화시켰는가
그러나 오스만 무슬림과 기독교인 사이에 있었던 평화 공존의 기조는 오스만 제국의 ‘긴’ 19세기(1774~1922 동안 많은 사건이 누적되는 가운데 형성된 상호 인식과 집단 감정으로 인해 무너졌다. 유럽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오스만 제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입지에 섰고, 오스만 제국을 보호하고 개혁을 지지한다는 미명 아래 오스만 기독교인의 추가적인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국내적으로는 유럽의 경제적 침투가 가시화되고, 내국인 기독교인이 부를 향유했으며 선교사들도 현지 기독교인에게 기술, 교육, 경제 면에서 혜택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탄지마트 개혁 시대에 중앙 정부가 유럽 외교관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는 모습은 무슬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당시 무슬림들은 군과 관료계 외에는 좋은 직업을 얻지 못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크림반도, 카프카스 지역 그리고 발칸반도로부터 많은 무슬림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와 큰 고난을 겪었다. 이 가운데 무슬림들은 이슬람 제국 안에서 자신들이 2등 시민이 되어 역차별 당하고 있으며 온당한 질서가 무너졌다고 생각했으므로,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기독교인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1870년대부터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격화된 상황은 크고 작은 영토 상실을 거듭하게 만들었고,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오스만 제국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 과정은 오스만 무슬림들에게는 극단적인 공포의 연속이었다.
무슬림들의 이러한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은 그들의 정체성의 구심점이었던 이슬람에 대한 폄훼과 멸시, 희화화였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에서 이슬람은 만만한 조롱거리였고 그 후에도 근대성과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부분들이 과장되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이슬람은 무슬림에게 버릴 수 없는 종교적 정체성이므로 이는 이슬람권에서 내셔널리즘의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터키의 서민층에게 종교적 소속과 실천이 중요함은 물론 세속주의 지식인도 전혀 종교적 실천을 하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