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실존에 의해 더럽혀지고 도덕적 모조품이 된 철학
철학이 본래의 실존을 되찾기 위한 관건, 탈도덕화
“오늘날 철학은 보수적인 도덕에 얽매여 공허한 과잉실존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철학을 그 도덕적 모조품과 구별하기 위해 철학이 출현의 세계 내에 제 모습을 드러내는 그 본질을 정돈하는 것이다.”
철학은 더 이상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실존으로 위협받고 있다. 미디어 스타들이 철학의 이름을 자신의 브랜드처럼 가져다 쓰고, 카페나 헬스클럽, 금융권 등에서까지도 철학이 호명되고 있는데, 거기서 철학은 도덕이나 윤리 혹은 일상적인 삶에 대한 교훈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고대의 소피스트들이 바랐던 것처럼, 다른 담론들과 다를 바 없는 여러 담론들 중 하나로, 도덕의 모조품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또한 이로써 철학은 견딜 수 없는 전 지구적 현상태에 대한 도덕적 묵인에 동원된다.(두 번째 선언이 쓰일 당시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 정부가 들어섰고, 무분별한 다국적 자본의 세계화가 맹위를 떨쳤으며, 미국의 군사주의 및 테러와의 전쟁이 펼쳐지는 것을 목도해야 했다.
이런 진단을 바탕으로 바디우는 철학의 고유한 실존, 소명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따라서 이 두 번째 선언에서 중요한 것은 철학의 ‘탈도덕화’이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철학을 탈도덕화(de-moraliser하는 일이다. 철학을 도처에 편재하는 만큼이나 예속적인 ‘철학들’의 공허함에 빠뜨리는 평결을 뒤집어야 한다. 철학은 보편적인 진리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무언가의 최대 실존을 획득할 때 출현한다. 이러한 조명은 철학을 인간의 형상과 ‘인권들’ 너머로, 모든 도덕주의 너머로 이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도덕과 법이, 지배적인 사회들과 그 야만적인 경제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더 단지 ‘자본의 대리인’일 뿐인 국가들이 세계에 부과한 터무니없는 불평등의 폭력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이상, 철학은 모든 도덕과 모든 법에 대해 고유한 비실존으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