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는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잘 데가 없어 학교 문예부실에서 청했던 도둑잠, 대학 시절 마치 신생아처럼 기숙사에 처박혀 내리 잤던 통잠, 히말라야 계곡에서 기절하듯 쓰러져 경험한 단잠, 인도 여행 중 잠 수행을 한다는 슬리핑 라마를 찾아 나선 이야기까지 잠과 관련한 인생의 여러 순간이 담겨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슬라임처럼 만지면 만지는 대로 형태가 변해서 결코 완성되지 않는” 잠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잠의 얼굴에서, 우리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일이기에 줄여야 하고 쫓아야 한다고 여기는 ‘죄책감’을 말끔히 지워버린다. 그렇게 『아무튼, 잠』은 깨어 있는 일의 고단함 앞에서 눈을 질끈 감은 우리 옆에 나란히 누워 나직하게 속삭인다. “자는 동안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고. “예를 들면, 편두통과 불안, 욕망, ‘맙소사, 이게 인생의 전부라고?’ 싶은 허망한 마음 같은 것들”. 그러니 “지금은 그냥 쉬”라고.
책 속에서
현실은 고되고 자극에 반응하는 자아의 활동은 활발하다. 하지만 자는 동안에 에고(ego의 생각 공장은 휴업에 들어간다. 자면서 불안, 결핍감, 고독, 분노, 갈망… 같은 것들도 정화 작업을 거쳐 다룰 만한 사이즈로 줄어든다. 잠잘 때 두뇌 회로 구조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활발하게 분비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안정감과 균형감각을 되찾고, 그 안도감을 몸과 마음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래서 중독된 것처럼 이불 속 동굴로 들어가곤 했다.
-「잠이라는 쾌락」중에서
사실 뭔가를 열망하고, 실망감을 이겨내며 산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걸 인지했다면 아무 때나 쏟아지던 잠에 조금은 더 너그러웠을까. 자신을 긍정하고, 스스로 애씀을 알아주고, 셀프 격려할 수 있는 청춘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걸 자기 합리화와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잠 덕후의 운명을 받아들이다」중에서
그 시절의 나는 가끔 수면 억압의 앞잡이가 됐다. 세계는 장막을 덮어쓰고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