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서장 『일본서기』는 왜 천황가의 기원을 은폐하였나?
1. 일본의 천황은 어디 출신인가?
1 천황가의 시조는 신무神武인가?
2 신무 이후 9대까지 가공의 왜왕
2. 천황가의 진실을 은폐한 이유
1 역사의 창작과 연장
2 『일본서기』에 보이지 않는 토착왜인
3 토착왜인의 민족분규에 대한 대비
3. 왜국 지배층 백제인들의 왜인화 정책
1 소수 민족에 의한 다수 민족 지배의 사례
2 돌아갈 곳이 없었던 재왜 백제인
3 『일본서기』는 구백제계 귀족의 관점에서 서술한 역사서
1장 허구의 왜왕과 창조된 왜왕릉
1. 왜 왜왕릉인가?
1 방치되어 온 왜왕릉
2 무수하게 많은 고분과 왜왕릉
2. 『해동제국기』로 본 『일본서기』의 변작
3. 허구의 왜왕과 창작된 왜왕릉
1 시조 신무(神武
(1 고고학으로 본 신무의 시대
(2 『해동제국기』의 옥의희玉依姬
(3 시조릉
(4 수릉修陵작업
(5 신무릉은 총산塚山고분에서 신무전神武田고분으로
(6 신무전고분의 타당성
(7 『일본서기』의 신무릉
2 2대 왜왕 수정綏靖
(1 결사8대 왜왕과 무덤
(2 수정의 실존 여부
(3 수정의 무덤
3 3대 왜왕 안녕安寧
4 4대 왜왕 의덕懿德
5 5대 왜왕 효소孝昭
6 6대 왜왕 효안孝安
7 7대 왜왕 효령孝靈
8 8대 왜왕 효원孝元
(1 무내숙내武內宿?, ta―ke―u―ti―no―su―ku―ne
(2 효원의 여러 아들과 오포피코大毘古
9 9대 왜왕 개화開化
(1 개화의 손녀 갈성지고액비매葛城之高額比買
(2 새로운 도읍지 카스카春日, ka―su―ka
10 10대 왜왕 숭신崇神
(1 임나의 조공
(2 칼과 거울의 제작
(3 근강주近江州의 호수와 서복徐福
(4 숭신의 무덤 72
(5 저묘箸墓
11 11대 왜왕 수인垂仁
(1 인간세상에 내려온 천조대신天照大神과 이세신궁伊勢神宮
(2 수인과 왕후의 무덤
12 12대 왜왕 경행景行
이렇게 오래된 천황가의 역대 천황들은 하나같이 이름만 있고 성은 없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의하면, 초대 신무는 현대의 규슈(九州 가고시마(鹿兒島현 휴우가(日向라는 곳에서 대군을 이끌고 동쪽으로 진군하여, 나라(奈良현 아스카(明日香에 있던 적을 무찌르고는, 그곳에 정착하여 왜국을 통치하였다 한다. 그렇다면 초대 신무는 바다 너머에서 건너간 것이 아니라 토착왜인인 셈이다. 위 두 책에는 토착왜인인 역대 천황들이 아득한 옛날부터 단 한 번의 왕조 교체도 없이 왜국을 통치하였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된 천황가의 역대 천황들은 하나같이 이름만 있고 성은 없다. 이러한 현상은 초대 신무부터 현대의 영화(令和천황에 이르기까지 전혀 변함이 없다. 현대의 문명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성은 없고, 이름만 가진 사람은 아마도 일본의 천황가 사람들 외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고대의 왜국(한국도 마찬가지에도 일반 평민은 성이 없고, 이름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귀족들은 당연히 성이 있었다. 성이 없는 귀족은 단 한명도 없었다. 오직 천황가의 사람들만 예외였던 것이다. 천황가는 성이 없으니 그 뿌리를 추적할 단서마저 존재하지 아니한 셈이다.
『일본서기』에서 밝힌 시조 신무조차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저자가 창안해 낸
가공의 인물인 것이다.
신무의 뒤를 이은 수정(綏靖으로부터 9대 개화(開化까지의 8대 왕을 일본의 사학자들은 ‘결사8대(缺史八代’라는 용어로 일컫고 있다. 역사가 빠진 8대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일본서기』나 『고사기』에 이 왕들의 행적이나 나라에 있었던 일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은 궁의 위치, 왕비와 자녀들의 이름, 사망한 해와 나이, 묘지의 위치 등이다. 그렇지만 왕에 관한 역사를 쓴다면 당연히 기록하여야 마땅한 여러 치적, 나라에 있었던 일, 여러 신하에 관한 기록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일본의 사학계에서는 근래에 들어 이 신무를 포함한 9대 왕들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