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사온 여행의 기념품,
냉장고 자석과 머그컵이 어느 날 말하기 시작한다,
다시 여행을 떠나겠노라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기념품 상점. 관광 명소답게 수많은 물건들이 놓여 있고, 그 가운데 두 사람은 각각 머그컵과 냉장고 자석을 집어 든다. 즐거웠던 여행을 추억하기 위한 기념품으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천사가 새겨진 머그컵에는 ‘안젤로’, 곤돌라 모양의 냉장고 자석에는 ‘곤돌라’라고 이름을 붙여 줄 정도로 이 물건들을 아낀다. 하지만 좋았던 시절도 잠시, 안젤로와 곤돌라는 곧 새롭게 사들인 다른 머그컵과 냉장고 자석에 밀려 집 안 구석에 버려진 채 잊히고 만다. 먼지가 쌓이고 더러워져도 그 자리에 놓인 채 움직일 수 없는 두 물건 앞에는 이제 기나긴 시간만이 남았다. 우리가 사놓고 잊어버려 방치된 수많은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버려진 안젤로와 머그컵이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게 한다. 둘은 집을 떠나, 고향 베네치아와 연결되어 있는 바다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행을 떠나기로 작정한다. 고양이가 장난을 치는 틈을 타서 책장에서 뛰어내려 보지만, 머그컵은 망가지고 결국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이 조그만 건 뭐지? 아휴, 더럽다. 쓰레기통에 버리자.”
한때는 예쁘다며 안젤로와 곤돌라를 사들였던 사람들은 이제 더럽다며 둘을 버린다. 안젤로와 곤돌라는 집 앞 쓰레기장에서 재활용 쓰레기 선별소로, 또 예상치 못했던 다른 곳으로 옮겨다니면서 쓰레기가 되어 버린 다른 물건들과 만나는 기나긴 여행을 하게 된다. 둘의 여행은 한 편의 로드무비와 같다. 장면 장면마다 쓰레기가 처리되는 공간의 모습을 무심히 보여주고, 그 공간을 거쳐 갈 때마다 조금씩 낡고 황폐해 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연출해, 우리가 버린 물건들이 어떻게 취급되는지, 쓰레기는 과연 어디로 가는지를 독자에게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이렇게 냄새나고 시끄러운 곳은 참을 수가 없어. 나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근사한 냉장고 자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