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과거에는 제대로 된 지도가 없었다. 그 시절의 외국 정복자에게는 지리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이때 강과 지형분수계 같은 자연적 특징을 지표로 활용하면 영토를 쉽게 규정하고 교환할 수 있었다. 어쨌든 강은 길고 연속적이며 명확한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토지를 측량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모두 소요될 터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강은 측량할 필요가 없었다. 군대를 동원한 정복 및 조약 협상에서도 강은 명확하고 객관적인 목표가 되었다. 강에는 토지 기록과 관련된 편의성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강은 그 자체로 탐험 및 무역에 필요한 통로로 활용되었다. 또한 강은 강 저지대에서 자라는 목재, 비옥한 토양, 물고기, 때로 금 같은 자연 자본도 제공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강은 원격지에 위치한 전쟁터로 인력과 보급품을 수송하는 수단이자 적군의 진격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제대로 된 지도가 없었던 시절에 원격지에 자리 잡은 식민 권력은 강이라는 자연적 특징을 기준으로 삼아 대륙을 탐사하고 군사전략을 수립하며 영토를 규정했다. 그 근원에는 자연 자본, 접근성, 영토, 군사력이라는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 2장 국경에서 pp.70~71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 델라웨어강을 건넌 워싱턴, 뫼즈강을 건넌 히틀러처럼 역사적 전환점의 중심에는 언제나 강이 있었다. 미시시피강에 자리 잡은 빅스버그와 볼가강에 자리 잡은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곳에서 흘린 피의 양을 감안할 때 군사적 접근성과 관련해 강이 지닌 가치가 얼마나 큰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거의 한 세기 동안 외국 해군은 양쯔강을 순찰하면서 반란을 진압하고 분노로 가득 찬 중국 내륙 깊은 곳까지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했다. 미로같이 얽혀 있는 수로와 운하를 물리적으로 통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메콩강 삼각주에서는 무려 4년에 걸친 끔찍한 게릴라전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전쟁에 관여한 모든 국가와 개인은 큰 트라우마를 안게 되었다.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