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07
어린 시절 _1789. 7. 14. 바스티유 습격사건
생쥐스트의 어린 시절·20 / 수도회 기숙학교 생활과 파리 상경·21 / 수감생활·29 /
바스티유 요새 함락 현장에서·33
로베스피에르와 만남 _1789. 6. 20.
바렌 사건텃밭에서의 선거 운동·46 / 공화파 주민과 다진 유대·47 /
조국의 제단 앞에서·51 / 로베스피에르와 편지로 맺은 인연·52 / 외로운 글쓰기·54 /
국왕의 도피와 로베스피에르와의 만남·57 /국민공회 의원 생쥐스트·63
파리 시절 _1792. 9. 2.~7. 27. 국민공회 의원
다락방의 밀담·73 / 절대로 부패할 리 없는 로베스피에르·75 /
청렴한 혁명가의 의지를 다지며·82 / 탕플요 새에 감금된 왕과 왕비·85 / 혁명의 참뜻·92 / 국왕 처형·95 / 최고 실권자 생쥐스트·101 / 공안위원회의 공포정치·109
알사스의 위기 _1793. 5. 30.~12. 27. 공안위원회 위원
군사 전술을 바꾼 생쥐스트·118 / 혁명군의 개혁·124 / 단두대의 수호천사·127 /
음모의 지뢰밭 스트라스부르·134 /혁명 과격파의 준동·141 / 승전가도·145 /
슈나이더 사건·148 / 진정한 야전 사령관·154
대혁명의 고비 _1793. 7. 13.~1794. 3. 6. 국민공회 의장
혁명정부 전복의 위기·159 / 국민공회 의장 생쥐스트·173 / 토지개혁·175 /
빈곤 퇴치의 영원한 꿈·197 / 교육사상·185
죽음의 대천사 _1794. 3. 24.~4. 5. 에베르와 당통의 죽음
혁명과 반혁명의 폭력·191 / 혁명 동지들의 부패·196 / 고독한‘ 죽음의 대천사’·199 /
긴박한 공안위원회·201 / 당통의 죽음·204
북동부 전선에서 _1794. 4.~6. 26. 플뢰뤼스 전투
벨기에 전선의 분전·211 / 로베스피에르와의 갈등·216 / 플뢰뤼스 전투의 대승·219
대천사의 희생 _1794. 7. 27. 테르미도르
생쥐스트에 관한 관심이 최근 폭증하고 있다. 학계와 전문가들, 대중문화에서도 생쥐스트를 다시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197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그에 관한 재평가에 이어 2000년대 이후 그의 전작집을 비롯한 방대한 자료가 정리된 덕분이다. 이 책은 역사를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싶어 했던 미슐레의 정신에 충실하다. 청년 혁명가의 순수한 신념을 통해 대혁명의 굵은 줄기를 더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시시각각 방대한 스펙터클로 넘치는 사건을 누구나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한 편의 전기로 엮었다.
저자는 생쥐스트를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으로,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공화국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자유와 평등, 박애 정신은 원숙한 노인의 지혜와 계몽사상의 결실이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믿고 실천한 청년의 용기로 영원히 시들지 않는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이었다. 역사상 이처럼 젊고 아름다운 주의나 주장은 없었다.
책 속에서
머뭇거리면 혁명은 실패한다. 사과만 받고 용서하려고 하다가는 실패한다.
“반쪽짜리 혁명에 나섰던 사람?모두 제 무덤만 팠다.” p.92
(방토즈 토지개혁법은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그러나 의회도 원치 않았고 위원회도 원치 않았다. 진심으로 생쥐스트의 제안을 지지한 사람들은 위원회에서 로베스피에르와 쿠통, 또 의회에서 몇몇 의원뿐이었다. 극도로 불안한 최악의 위기 상황이라 위원회가 승인했고 의회는 통과시켰다. 심각한 민중 봉기를 피하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러나 위원회도 의회도 법령을 시행할 의지는 전혀 없었다. 의원 다수가 지주 집안 출신이었고 당통과 메를랭 드티옹빌 같은 의원들은 혁명으로 부자가 되었다. 토지개혁법안은 통과되었지만, 동시에 생쥐스트와 로베스피에르의 운명도 내기에 걸렸다. 이들이 법 시행을 강력히 주장하자 동료들은 그들과 싸웠고 그것은 전쟁이었다. 생쥐스트가 열렬하게 연설했을 때 이미 죽음의 그림자는 스멀거리며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p.185
“당시 사건들을 가까이서 본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