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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할머니들의 야간중학교 (질문의 책 28 (재일조선인 여성, 삶과 투쟁의 주체가 되다
저자 서아귀
출판사 오월의봄
출판일 2019-10-15
정가 19,000원
ISBN 9791187373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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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9
1. 연구 목적 11
2. 연구 시점 18
3. ‘재일조선인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44
4. 선행 연구 64
5. 조사 방법 68
6. 연구 구성 76

1장 재일조선인 여성의 운동 분석 79
1. 민족운동과 여성운동 사이에서 81
2. 분석틀 86
3. 재일조선인 여성운동 단체 검토 89
4. 결론 117

2장 다이헤지 야간중학교 독립운동의 생성과 전개 121
1. 재일조선인 여성이 주체가 된 사회변혁 운동 123
2. 관서 도시 지역의 소수자 운동 126
3. 재일조선인 거주지와 민족운동 132
4. 야간중학교 증설 운동 139
5. 다이헤지 야간중학교 독립운동의 생성과 전개 150
6. 운동 단체의 상호작용과 하위의 대항 공론장 160

3장 재일조선인 여성의 생애과정 167
1. 야간중학교에서 배우는 중노년 재일조선인 여성 169
2. 비문해·비취학의 성별화 174
3. 주류 사회에서의 소외와 가족 의존 180
4. 성역할의 변화와 야간중학교 입학 184
5. 가부장제와 협상하다 192

4장 야간중학교 독립운동에서 형성된 대항 주체 207
1. 새로운 여성 주체 창조 209
2. 재일조선인 여성의 사회 공간인 공립 야간중학교 213
3. 공적 영역으로 나아가는 통로인 공립 야간중학교 229
4. 여러 영역에서 형성된 대항 주체 234
5. 지역의 다문화주의와 ‘할머니’ 주체 256

5장 재일조선인 여성의 세대를 넘은 연대와 민족의 재편성 265
1. 야간중학교 운동의 세대를 넘은 상호작용 267
2. 이주여성의 ‘사회·문화 매개’ 270
3. 데이하우스에서 이루어진 다원적 상호작용 276
4. 세대가 다른 여성의 연대와 민족 자원 284
5. 성별 질서와 민족 질서를 재편성하다 288

6장 재일조선인 여성과 ‘하위의 대항 공론장’ 293
1. 각 장의 요약 295
2. 운동 행위자로서 재일조선인 여성의 가시화와 역할 301
3. 하위의 대항 공론장 이론에
“말을 뺏긴 아픔을 알아라”, “겨우 글자를 터득했다, 더 공부하고 싶다”
다이헤지 야간중학교 독립운동 ‘허스토리Herstory’
1960년대 말에 활발했던 야간중학교 증설 운동의 성과로, 1972년 동오사카 시립 조에 중학교 야간학급이 만들어졌다. 1974년에는 재일조선인 학생이 전체의 79%를 차지했고, 학생 평균 연령은 점점 높아져서 1982년 58세를 기록했다. 1990년에는 학생 수가 약 400명에 달하면서 급기야 주간 학생 수를 넘게 된다. 학생 대부분은 중노년 재일조선인 여성이었다.
학생 수가 증가해 시설이 부족해지자 1980년대 말부터 긴키야간중학교연락협의회와 세계문해의해추진동오사카연락회가 동오사카시에 야간중학교를 증설하도록 시 교육위원회에 요구했지만 문제는 방치됐다. 그런데 1992년 6월 “야간중학교에 넘쳐나는 학생들”(산케이신문이라는 기사가 실리자, 주간 학생 학부모교사연합회와 시 교육위원회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 회의를 시작했다. 저자는 이 기사에서 ‘학생 대부분이 재일조선인’이라고 밝힌 점이 그동안 재일조선인이 눈에 띄는 걸 꺼림칙하게 여겨온 주민들을 자극했다고 분석한다. 이 문제의 배경에 지역사회의 뿌리 깊은 재일조선인 멸시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해 조에 중학교에서 남쪽으로 1km 떨어진 다이헤지 중학교에 분교 교실이 만들어졌고, 조에 야간중학교 학생 378명 중 121명이 분교로 옮기고 신입생 58명을 더 받아 총 179명으로 ‘조에 중학교 야간학급 다이헤지 분교 교실’이 열렸다. 그러나 정식 학교를 개설해달라는 요구는 여전히 무시됐고, 교육 환경은 더욱 악화됐다. 학생은 180명이 넘는데 분교 교실은 단 3개뿐이었다. 교실에서는 어깨가 서로 닿을 만큼 가까이 앉고 복도에도 책상을 내놓고 앉았다. 오랫동안 지역에서 재일조선인으로 멸시받으며 산 여성들에게 그런 행정 처우는 민족 차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에 중학교 야간학급 학생회는 분교를 독립된 야간중학교로 변경하도록 교육위원회에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