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사망, 낙태 금지, 강제불임수술 …
여성의 건강은 어떻게 인간의 권리가 되었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민주주의·안보가 다시금 와해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유엔이 창설됐다. 그 후 세계인권선언이 ‘모든 인류를 위한 공통된 기준’으로 채택되며 국제 인권법의 기반이 되었다. 인권법에서 정의하는 ‘인간’의 개념과 인권법이 보장하는 권리의 내용은 지난 30년 동안 여러 도전을 마주하며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비운의 죽음은 없다』는 특히 여성의 권리와 성·재생산 건강에 초점을 맞추어 그 발전 과정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발전 중 상당 부분은 여성의 건강권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정치적·경제적 권력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국제 인권법에서 여성의 성·재생산 권리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등장한 과학적인 피임법이 1970년대 들어서 널리 확산됐고, 1979년에는 전 세계 여성운동의 공조로 ‘여성차별철폐협약’이 채택됐다. 공적 영역을 넘어 사적 영역에서의 여성차별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첫 번째 인권조약인 여성차별철폐협약은 형식적 평등과 함께 실질적 평등의 필요성을 증진했다.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에서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사이의 장벽이 허물어졌고, 이는 사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여성 폭력이 ‘인권문제’로 다뤄지는 계기가 됐다. 1994년과 1995년 각각 카이로와 베이징에서 열린 유엔회의에서는 재생산 건강과 권리 그리고 성평등을 증진하기 위해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대담한 행동 계획들이 선포됐다.
『비운의 죽음은 없다』에 따르면 여성 인권의 발전은 역풍을 맞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보건의료제도가 구조조정 프로그램(국제통화기금 또는 세계은행에서 금융지원을 받을 때 추진해야 하는 경제정책으로 대체되었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산과 응급진료와 같은 필수적인 아동·모성 건강 서비스에도 이용료를 도입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