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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제주신화의 숲 : 문화소로 걷다
저자 강순희
출판사 한그루
출판일 2022-12-23
정가 22,000원
ISBN 9791168670716
수량
1부 문화소로 걷다

죽어서 돌아가는 길
〈원천강본풀이〉 오늘, 혼자서 갑니다 18
〈삼두구미본〉 땅귀의 이사 47
태어나 처음 오는 길
〈눈미불돗당본풀이〉 바위와 금쪽이 78
밥을 위한 여러 갈래 길
〈세경본풀이〉 밭의 여신, 사랑을 거두다 100
〈삼달리본향당본풀이〉 음매장군과 황소집사 192
〈고내리당본풀이〉 바다 장군 맞이하기 224
치유의 길
〈지장본풀이〉 새가 날자 병이 떨어져 256

2부 제주신화의 숲 탐방로

안내문 290
신화란 무엇인가
인간의 문화질서를 신의 서사로 드러낸 이야기, 신화 298
‘그때-거기-그들’과 ‘지금-여기-우리’ 사이의 간극 305
문화에 남아 있는 간극의 열쇠 308
제주신화, 본풀이
본풀이, 문화질서의 본을 풀다 314
문화질서의 의인화, 신 317
다양한 신, 다양한 제주 문화 325
신화의 두 층위
신의 얼굴, 인간의 마음 336
신화문법 342
심층의 의미 찾기 346
문화소와 신화소
신화에 나타난 문화소 356
신의 서사를 실어나르는 신화소 367
신화소와 문화소의 결합, 신화 374
문화 코드
소통의 필수요건, 코드 388
생활양식을 드러내는 규칙, 문화코드 397
신화의 문화코드 402
문화적 스토리
신화의 서사 409
문화적 스토리 419
문화적 스토리 구성하기 424
작가의 말

가을 잎이 물들고 있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 하나둘 내게로 오는 중입니다. 〈세경본풀이〉를 읽었던 봄에는 자청비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무작정 걷기만 했습니다. 숲은 흥미롭고 아름다웠지만 낯선 단어와 문장으로 가득했습니다. 몇 번이고 걷다 보니 〈지장본풀이〉에서 지장아기씨를 만나고, 〈삼달리본향당본풀이〉에서 황서국서어모장군도 만났습니다. 초록의 여름, 무성한 잎들이 나무를 에워싸 하늘을 가리는 계절이었습니다. 숲이 창을 닫았습니다. 온전히 숲의 시간, 제주신화에 빠져 자청비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장아기씨의 슬픔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자수매트는 편히 걸으라고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만, 돌부리가 솟아난 부분을 일부러 골라 걸었습니다. 돌부리에 차여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도 많았지만, 내가 밟은 돌부리가 다음 문맥의 징검돌이 되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듬성듬성, 띄엄띄엄 놓았던 때문일까요? 나의 징검다리는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비판인지 비난인지 모를 힐책으로 논문 심사장은 채워졌습니다. 꼭 두 해 전 오늘, 박사학위 청구 불합격의 날이었습니다. 그 겨울은 참 길었습니다. 어김없이 때죽나무는 하얀 종을 떼로 매달아 놓았습니다. 아기의 돌잔치, 아버지의 첫 제사를 치르듯 친구들 앞에서 일 년 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여름이 가고 겨울이 가는 동안 많은 손길이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종낭의 종소리가 숲으로 나를 불렀습니다. 먼지 쌓인 논문을 꺼내어 보니 모자란 것투성이지만, 징검돌 하나하나를 쓰다듬어 보았습니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부리들은 이해할 수 없는 환상의 세계 이전에 사람의 길로 이어져 있음이 분명하였습니다.

〈세경본풀이〉의 자청비는 제주의 거친 밭이었습니다. 왜 자청비가 그토록 문도령을 위해 고군분투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문도령은 밭에 뿌려질 귀한 씨앗이었으니까요. 자청비를 괴롭히는 종놈, 정수남이는 밭을 일구도록 도와주는 마소였습니다. 이 셋은 없어서는 안 될 삶의 그릇,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