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무너지고 의견이 지배하는 탈진리의 시대. 누구나 사랑을 말하지만, 아무도 사랑을 믿지 않는 시대에, 진리의 철학자 바디우를 통해 ‘진리로서의 사랑’을 성찰하는 한 정신분석가의 탐구
#너희가 사랑을 믿느냐?
플라톤은 “사랑을 해보지 않은 자는 철학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프랑스 철학자 바디우는 이렇게 첨언한다. “철학자가 드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철학의 본령은 참된 삶의 가능성을 사유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참된 삶은 사랑이라는 독특한 진리의 버팀목 위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오늘날 그 누가 사랑을 진리라는 이름으로 부를 용기를 낼 수 있는가?
‘탈진실’ ‘탈진리’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지도 한참이다. 진리가 무너진 자리에 의견만 무성한 탈진리의 시대에 사랑 또한 온전할 리 없다. 한마디로 누구나 사랑을 말하지만, 아무도 사랑을 믿지 않는 시대이다. 감정·관계·관습·제도·돈·섹슈얼리티로서의 사랑은 그토록 흔한 반면, 진리로서의 사랑은 매우 드물다. 동시대 한국사회가 바로 그러하다. 외모 지상주의는 사랑을 성적 매력으로 환원하고, 연애자본은 사랑에 자격을 내걸어 계층 분할을 야기하며, 결혼 규범은 자유로운 주체 간의 공동체 구축보다 집안배경이라는 계산적 조건에 따른 거래를 양산하고, N포 세대는 사랑은 커녕 연애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며, 젠더 갈등은 사랑의 재료로 활용되어야 할 성적 차이를 양성 혐오로 변형시킨다. 사랑은 누군가에 의해 낭만주의적 신비로 격상되거나 일상에서 동물적 섹슈얼리티로 격하될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불가역적으로 보이고, 사람들은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순응하거나 체념한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정신분석학자 박영진의 새 책 『사랑, 그 절대성의 여정』은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어쩌면 반反시대적 고찰로 여겨질 만하다. 2019년에 출간된 『라캉, 사랑, 바디우』(2019에서도 저자는 철학과 정신분석의 긴장된 결합을 통해 사랑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 바 있는데 그것은 인간 주체에 대한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