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는 나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만물은 나와 한몸이다
『관조』는 스님의 출가본사이자 평생을 주석했던 부산 범어사 사진으로 시작한다. 속세와 탈속의 경계인 사찰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당간지주를 만나게 되고, 곧이어 절집의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열린 공간이 나타나고, 그곳에 어우러진 탑과 석등을 둘러본 후 대웅전을 포함한 각 전각을 살핀다. 그러고 나서 그 안의 불상, 탱화, 닫집, 문살, 수미단, 나한, 단청 등을 하나하나 보듬는다. 이어 수행자들의 일상 공간인 승방, 공양간 등의 사계절 모습을 들여다본 후, 다비식과 수계식을 비롯한 특별한 의식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범종, 부도, 탑비 등까지 두루 짚은 뒤에 다리를 건너 폐사지로 향하는 흐름이 『관조』가 인도하는 여정이다.
이 만행의 길에는 자연과 인간의 만화(萬化가 숨 쉰다. 종교를 넘어 수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 큰스님들의 친근한 모습, 쉽게 볼 수 없거나 이제는 볼 수 없는 문화유산들의 소중한 모습들이 함께한다.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도 환한 명예를 얻는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돌계단, 기와 등 그저 묵묵히 세월의 자국을 간직해온 사물들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사찰의 모든 대중이 모여 땀 흘리며 일하는 울력을 통하여 수행과 노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현장도 만날 수 있다. 선방(禪房에서 정진하다가 잠시 밖으로 나와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 직전의 자연스러운 찰나를 담은 스님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다양한 형상의 나한을 연상케 한다. 전각의 검은 그림자, 누군가 켜놓았을 촛불 등 스님이 포착한 순간적인 장면들은 그 당시에 현실로 존재했을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처럼 스님의 렌즈 속으로 들어온 옛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너무도 고졸하고 푸근하다.
특히 스님의 ‘꽃살문’은 일찍이 서구에서도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창의성을 인정받았으며, 전국의 국립박물관과 해외 유수의 박물관에서 전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