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 저널리즘 글쓰기의 생명
1부. 저널리즘의 추락
동일방직 야만과 언론의 만행
어느 기자의 선물과 눈물
한국 언론의 희망인 김 형에게
기자 직업과 직업기자의 의미
대통령과 씁쓸한 자살률 1위
저널리즘의 추락, 과연 ‘사주’ 탓일까?
세 모녀 참극과 위선의 무리
이순신의 호로자식 후손들
2부. 악마와 민중 사이
조중동의 흉기, 성유보의 정기
‘한국인의 중심 채널’ KBS의 민낯
민생 살리기와 언론자유지수
경제 민주화와 자본독재
민중의 민중을 위한 언론
청소노동자와 공항의 ‘별’
누가 그들을 죽이는가
악마와 민중 사이
3부. 한 괴물의 슬픈 칼럼
어둠과 눈물과 혁명의 미디어
촛불혁명과 국정 안정
보수·진보 진영 논리의 함정
누가 저 엄마에게 돌 던지는가
노무현의 후회, 문재인의 선택
청와대의 참 이상한 ‘실사구시’
‘문재인?김정은 노믹스’와 미국
400년 전 ‘한 괴물’의 슬픈 칼럼
4부. 어둠과 촛불
김미숙의 슬픔, 문재인의 사과
정치판의 촛불, 김미숙의 정치
노덕술의 국가, 김원봉의 조국
북유럽 6박 8일과 문재인의 ‘영감’
‘조용한 일본인’ 귀하
우울한 현대사, 광복절의 우수
나가는 말 : 촛불이 흔들리는 까닭
□ 칼럼에 들어간 우리말 뜻풀이
본문에서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객관적인 통계가 한 가지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살률이 그것이지요. 1만 5566명의 자살자 수. 그 숫자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애틋한 삶과 슬픔, 고통과 노여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저는 기자 시절에 언론사 사주들을 살천스레 비판했던 글들을 곱씹고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한국 저널리즘이 망가졌다고 판단해서였지만, 그런 비판이 의도와 달리 현업 언론인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무장 커져가서입니다. 언젠가도 고백했듯이 모든 걸 사주 탓으로 돌림으로써 언론인들의 실존적 성찰을 가로막았다는 자성이 밀려옵니다. -본문에서
<독립신문>이 의병을 ‘의병’으로 보도하지 않았지요. <독립신문>은 의병을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무리’라는 뜻의 ‘비도’로 기사화했습니다. ‘비도 7놈을 죽였다’는 따위로 서슴없이 ‘놈’으로 몰아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바로 그 신문의 창간 기념일이 지금 우리가 기념하는 ‘신문의 날’입니다. -본문에서
언론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할수록, 뉴스 생산구조가 민주적일수록, 그래서 민중이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며 여론을 형성할수록 선거에서 보편적 복지를 공약하는 정당이 집권한다는 원칙을 도출해낼 수 있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가설이지만, 나는 그 원칙을 ‘민중언론학’의 주요 명제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본문에서
언론과 대학이 살아 있다면 권력과 자본이 대한민국처럼 망가지진 않는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되레 권력을 추구할 때, 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연구하고 제시해야 할 대학이 자본의 논리를 좇을 때, 그 나라의 내일은 무장 어두울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젊은 세대가 문제의식도 비판정신도 없다고 개탄한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언론을 죽인 것은 독자나 시청자가 아니라 언론 귀족이듯이, 대학 정신이 죽어가는 이유도 대학생에게 있지 않다. 권력과 자본에 줄 선 교수들에게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