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4
제1장 성경 읽기의 베이직: 문맥을 따라 읽기 8
1 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언급하셨을까? 9
2 출교 절차와 합심 기도에 대한 오해 16
3 불의한 청지기 비유 26
4 삼사 대까지 받는 저주와 신 포도 속담의 진의 36
제2장 성경 읽기의 레벨업Ⅰ: 통일된 주제 안에서 읽기 42
1 왜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을까? 43
2 노아는 왜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했을까? 52
3 왜 할례를 명령하셨을까? 58
4 예수님께서는 땅에 뭐라고 쓰셨을까? 66
제3장 성경 읽기의 레벨업Ⅱ: 하나님의 관점에서 읽기 74
1 왜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까? 75
2 왜 병 고쳐주신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을까? 82
3 하나님께서는 왜 요셉이 꿈꾸게 하셨을까? 90
4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왜 하나님의 사람을 속였을까? 98
제4장 성경 읽기의 깊이 더하기: 원문을 고려하여 읽기 108
1 선악과를 먹는다는 의미는? 109
2 “만일 세 낸 것이면 세로 족하니라”는 무슨 의미인가요? 116
3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무슨 의미인가요? 120
4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는 무슨 의미인가요? 128
| 마치는 글 | 136
시작하는 글
저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사춘기 방황으로 청소년기에는 여러 교회를 출석했습니다. 그로 인해 여러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는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기 위해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본문에 대한 여러 해석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시절 즈음 저는 19세기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를 좋아했었습니다. 랭보는 상징주의 시인으로 상징주의는 주관적인 감각에 따른 느낌을 상징화시키는 예술 사조입니다. 랭보를 말씀드린 이유는 제가 상징주의 해석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다양한 심층과 각도에서 비유와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기존에 들었던 어떤 성경 본문의 해석 외에도 여러 해석을 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성경을 다양하게 해석해도 괜찮은 건가? 한 본문에 대한 여러 해석이 모두 옳을 수 있을까?’
종교개혁 이후 성경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만인제사장 신학 아래에서 성경해석이 폭발적으로 다양해졌습니다. 난립하는 해석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바른 성경해석을 위한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기준을 세우기도 하고, 교리를 정립해 수용할 수 있는 해석의 울타리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는 주관적인 성경해석을 자유롭게 허용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는 문자주의 해석, 비유적 해석, 영적 해석 등 다양하게 성경을 해석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각 개인이 본문을 이해하는 차이에 따라 역사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각 개인의 해석적 역량을 고려한 적용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옳은 해석과 그른 해석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어린 시절 알았던 본문을 성장한 후에 새롭게 깨달은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미숙했기 때문에 바르게 해석하지 못한 것이지 본문은 원래 그 주제를 말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