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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2080년의 낭만 : 2080년을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띄우는 아프고 아름다운 손편지의 낭만 - 십대의 원고지 1
저자 이하은
출판사 주니어태학
출판일 2023-01-05
정가 14,500원
ISBN 979116810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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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처음이지
쓰고 쓰고 또 써 부친 편지들
부치지 않은 편지
2080년 10월 31일
2079년도의 낭만
책 속에서

2079. 10. 31

펜시어, ‘우리’는 발전소 폭발의 아픔에서 기원한 거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잖아. 발전소 폭발로 목숨을 잃거나, 평생의 보금자리가 산산조각나고, 자의로든 타의로든 가족들의 손을 놓고 흩어졌던 수많은 이들을 떠올려 봐. 보육센터는 나의 집이고, 센터 선생님들이 나의 부모님이고, 우리 그룹 애들이 내 형제자매들인 것과는 별개로, 어떤 질문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건 떨칠 수가 없더라. ‘그 많은 사람 속에 나의 기원이 되는 사람도 있었겠지?’ 하는 질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어.
그래서 너만 조용히 읽을 수 있도록 글로 남기기로 한 거야. 정말로 많은 아이들이 혼자가 되었어.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참담한 심정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발전소 인근 지역들은 한동안 무법지대가 되어버렸지. 각종 불법 인체 시술을 하는 업체들에게, 혼자가 된 애들만큼 좋은 먹잇감이 없었을 거야.

난 운 좋게 정말 어릴 때 시술 업체에서 구출될 수 있었어. 그래서 나쁜 기억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몸에서 지워지지 않을 그곳에서의 흔적을 대면해야 해. 불법 홍채 미용시술을 위한 실험물로 사용되면서 얻은 아주 부자연스러운 색깔의 눈동자 말이야. 사정을 깊이 모르는 사람들은 근사한 색이라고 칭찬해줄 때도 있어. 칭찬에 담긴 호의는 언제나 고맙지. 기껍고. 내 눈을 볼 때마다 끔찍한 기억이 떠올라서 괴롭다거나 하지도 않아. 그런 것들이랑 별개로, 이건 내가 담고 살아가야 하는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야. 고통도 쓸쓸함도 적절한 단어가 아니라서, 덩어리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네.
--- pp.10-11

추신 : 와, 편지를 쓴다면 언제나 이 ‘추신’을 꼭 써보고 싶었어.
어쨌거나 빠트린 얘기가 있어서 추가해. 내 옆방 양쪽에는 자한이라는 동갑내기 친구와 식물학자인 율리안나 누나가 살게 될 거래.
잠깐 홀로행아웃으로 대화해본 게 전부이긴 하지만, 다들 좋은 사람들 같아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