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연인들의 아토포스
사랑이라는 장소
헤테로토피아와 아토포스
연인들의 장소 없음
II. 욕조와 우주선
소음에 둘러싸인 방
베란다와 발코니
책과 의자가 있는 방
식물들이 있는 방
계단 아래의 침묵
지하실과 다락방
침대와 뗏목
욕조와 우주선
거울 뒤의 세계
우기의 유리창
우산 아래의 벤치
밤의 골목으로 가려면
III. 테라스의 리듬
밤의 운동장
서점에서 시작되는 일들
테라스의 리듬
다리 위에서 놓치다
자동차의 물리학
언젠가의 카페
두 개의 극장
자연사 박물관 앞에서
익명의 광장
몇 개의 기차역
국경과 공항
비행 중
이국의 거리에서
IV. 동굴에 관한 이론
흐르지 않는 강변에서
멀고 따뜻한 바다
얼굴 없는 돌 아래서
산이라는 섬
당산나무가 있는 숲
사막처럼
동굴에 관한 이론
연인들의 공터
검은 방
우리가 없는 방에서의 포옹
시간 너머의 창문
에필로그: 도래하는 장소로부터
참고문헌
후기: 이 책은 왜 쓰여졌을까?
마주침과 틈새가 만드는 장소들의 몽타주
“그것은 조그만 얼룩이고, 작게 난 흠집이고,
찔린 자국이고, 부식된 쇠붙이이고, 우연한 구멍이다.”
이 책은 연인들의 시간이 장소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관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사랑이라는 사건은 두 사람을 사랑의 무대에 올려놓고 질서에 균열을 일으킨다.” 사랑이라는 사건이 벌어지면 특정한 이름을 갖던 장소, 그 목적과 정체성이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던 장소는 임의적이고 잠재적인 것으로 변모한다. 우연한 장소가 연인들의 시간을 통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별성을 갖게 된다. 장소는 사회와 제도가 부과하는 법칙과 물질적 중력에서 풀려나 다른 공간으로 발명되고 변환된다. 연인들은 장소의 유랑자가 되고, 항해사가 되고, 일시적인 침탈자가 된다.
그런데 이 연인들의 장소는 사랑의 행위가 지나간 이후에는 그 모습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연인들의 장소의 특징은 필연적인 사라짐에 있다. 따라서 연인들의 장소에 대한 상상은 일종의 애도의 방식이 된다. 저자는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나 블랑쇼의 ‘연인들의 공동체,’ 롤랑 바르트의 ‘아토포스’ 등의 철학적 개념들을 경유해 연인들의 공간이 갖는 이러한 특성들을 설명해나가는 한편, 다양한 소설 텍스트 및 ‘나’와 ‘그’라는 익명의 픽션적 존재 사이를 활보하며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쓰기의 실험을 수행해나간다.
그렇다면 연인들의 장소 또는 사랑이라는 사건의 급진성은 어디에 있는가? 저자는 사랑이라는 사건의 수행성이 장소를 변형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소의 시간 자체를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장소들의 마주침과 틈새가 만드는 장소의 몽타주는 장소에 다른 리듬을 부여하고, 장소의 상상력은 기억 너머의 남겨진 시간의 목소리를 듣게 만든다. 연인들의 장소는 일상의 시간, 고착화된 역사의 시간이 아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분을 넘어서는 잠재적이고 징후적인 시간을 대면하게 한다. 사랑의 장소에 대한 상상력이 정치적, 미학적 리듬을 갖게 된다면, 바로 이런 대면의 순간에서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