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20여 년, 베트남 전쟁의 양측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 전쟁의 종결 및 평화 회복에 관한 협정’(파리 협정이 조인된다. 미국은 이 협정에 따라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2년 후인 1975년 4월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은 북베트남군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에 의해 함락된다. 그리고 1976년 통일 베트남, 즉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된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1997년 6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S. 맥나마라를 비롯하여 관료, 군인, 학자 등으로 구성된 13인의 참가단이 베트남 하노이를 찾는다. 이른바 ‘하노이 대화’를 위해서다. 미국 참가단에 맞선 베트남 참가단 역시 응우옌꼬탁 전 외무장관 중심의 13인으로 구성되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군인과 관료 그리고 학자로 구성된 양측 대표단은 3박 4일 동안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뜨거운 토론을 벌인다.
‘하노이 대화’와 그 전후 맥락을 취재한 NHK 다큐멘터리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 베트남 전쟁?적과의 대화>
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을 통해 그 생생한 현장을 느껴보자.
무지와 오해가 낳은 비극
‘하노이 대화’는 ‘미스트 오퍼튜니티?Missed Opportunities?(기회를 놓쳤는가?’로 명명된다. 전쟁을 피하거나 조기에 종결시킬 기회를 혹시 놓친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에서다. 나흘간의 토론을 통해 그들은 ‘놓쳐 버린 기회’를 되짚는다. 만약 트루먼 대통령이 1945년 9월에 호찌민 주석이 보낸 편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는 프랑스에 반대했더라면? 1954년 제네바 회의에 따라 결정된 1956년 통일선거를 미국과 남베트남이 거부하지 않았다면? 1960년대 초 부상했던 ‘남베트남 중립화 구상’이 진지하게 논의되었다면? 1960년대 후반에 진행되었던 ‘비밀 평화 협상’이 무산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