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열다
조성환, 권두언 - 자연 없는 생태학, 성장 없는 경제학, 진보 없는 지구학
새글모심
주기화, 해러웨이의 자연문화와 퇴비주의
김영진, 화이트헤드의 자연
안호성, 스티븐 샤비로와 사변적 실재론
김남희, 가죽가방과 스테이크 그리고 경물敬物
조성환, 인류세 시대에 다시 읽는 기학氣學
새말모심
한윤정, 지구를 수리하기, 인간을 수선하기 (인터뷰어 산드라·산뜻
새삶모심
주요섭, 신명과 역설: 생명의 세계관 ‘또’ 다시 쓰기
윤석, 개벽, 살림, 풍류
이무열, 혼자이기에 상상할 수 있고 함께 있기에 할 수 있는 정치전환들
신채원, 화끈하게 모여 본때를 보여줍시다
신승철, 식량위기를 넘어선 농업의 전략지도
새길모심
라명재, 천도교수련 2: 천도교 주문 수련
다시읽다
장정희,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 기념사업
박정민, 동학의 자아관
홍박승진, 새로 찾은 1938년 이전 윤석중 작품 44편 (2
안태연, 월남미술인 다시 보기 (1: 홍종명(洪鍾鳴, 1922-2004
다시잇다
박달성, 박은미 책임번역, 오직 ‘참’이 있으소서
백인옥, 박돈서 책임번역, 천지의 주인은 나
다시개벽 제9호에서는 오늘의 인류 문명을 조성한 ‘근대’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다시 묻는다. 지금 인간이 누리는 근대 문명이 자연을 착취한 진보와 성장의 결과물임이 확실해지는 ‘인류세’를 문제 삼는 것이기도 하다. 근대적 인간은 당연한 듯이 인간을 이 자연 세계, 우주 속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여겨 왔지만, 인류세에 접어들면서 그것은 ‘거대한 착각’이었음이 분명해지고 있는 상황과도 관련이 깊다.
여기서 ‘자연’은 두 가지 상반된 함의를 표현한다. 하나는 ‘천지자연’의 의미로서 인간이 그곳으로부터 산생(産生하였고, 그 품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원천이며 터전으로서의 자연이다. 두 번째는 ‘근대 인간’이 인간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거나 미개지(未開地로 간주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정복’ 내지 ‘개척, 개발’의 대상으로 삼았던, 대상화된, 인간화된, 식민화된 자연을 말한다. 전자의 의미는 이미 ‘과거’의 생각으로 유폐된 지 오래고, 후자의 의미로 이해하며 ‘자연살해’를 저질러 온 결과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위기, 환경재난인 것이다.
오늘의 인간 지성은 이러한 진보 아닌 진보의 대안으로 회복과 치유를 성장 아닌 성장의 대안으로 성숙과 번영을, 자연 아닌 자연의 대안으로 가이아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 하나,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본래부터 ‘천지자연’이라는 관념으로 인간과 만물이 이 자연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당연한 이치로 여겨 왔다. 이러한 동아시아적 사고는 산업혁명 이래 서구 사회가 전 지구적인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퇴행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퇴출되거나, 미신 내지 신비주의적인 사고로 치부되어 퇴화하거나, 오늘날 인간 삶의 현장에서 퇴장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과 태도를 재발견하고 재조명하며 재음미하고 재생산하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고 있기도 하다. <다시개벽>의 지향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혹은 <다시개벽>이야말로 그러한 행태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주기화는 생물학자이자 여성학자인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