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여성들이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요구는 어떠한 의미인가? 여성들 사이의 차이, 그 차이들에서 비롯된 목소리 크기의 차이는 여성을 단일한 존재로 빚어냄과 동시에 어떤 여성들의 억압을 지워낸다. 쉽게 말해, 여성이라는 단일한 존재를 말할 때 부유한 엘리트 여성의 목소리가 여성을 빚어낼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번 더 지워진 여성들은 자신을 인정하라는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인가? (1장 「보편X특수」 40쪽
나는 우리가 지식을 생각할 때, 그 지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그러한 지식이 어떠한 존재들을 없는 존재로 가려내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는지에 대해서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찰이란 어떤 것이 옳고 그르냐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특정한 방식을 되돌아봄으로써, 내가 어떠한 맥락에서 권력자로서 지식과 영합하는지 사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뻔하지만 되돌아보고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외연이 넓어질 수 있다. 소수자의 숙명이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결국 나부터 바뀌어야 남이 바뀌는 법이다. (2장 「지식X권력」 65쪽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을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언제나 말을 꽤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질문할 때면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할 때면 늘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고 나서야, 사람들이 나에게 진실로 궁금한 것을 물어본 것이 아니었으며, ‘나’는 그저 정해진 답을 인정받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페미니즘의 항복을 받아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은 성폭력이 권력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나를 궁지로 몰아 ‘남성은 여성에 비해 성욕이 크다’는 둥의 구닥다리 논리를 페미니스트의 입으로,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로 들어냄으로써 항복을 받아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3장 「나X너」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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