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디우스의 유쾌한 경망(輕妄
영어권 독자들에게 <오비드>로 알려져 있는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는 기원전 43년 로마의 술모(이탈리아에 있는 지금의 술모나에서 부유한 기사(騎士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오비디우스는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관리가 되기 위해 로마로 나와 수사학과 법률을 배우게 됩니다만, 오비디우스는 바야흐로 카에사르의 뒤를 이은 아우구스투스가 평화를 정착시킨 이 역동적인 도시에서 따분하게 관리 노릇이나 하고 있을 사람이 못 되었던 모양입니다. 당시의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에 의한 이른바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가 꽃피던 시절, 도시에는 호화스러운 극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던 시절, 메살라와 마에케나스(예술의 후원자를 뜻하는 프랑스어 \’메세나\’는 이 이름에서 유래한다의 문단(文壇은 젊은 문학 지망생들을 고무하여 현실적인 근심걱정에 구애되지 않은 채 문학적인 재능을 갈고 닦을 수 있게 해 주던 그런 시절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아버지의 희망을 저버리지 못해 오비디우스는 짧은 기간 관리 노릇을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월을 보내기에는 오비디우스는 지나치게 재주 있는 사람, 유쾌한 사람, 유복한 사람이었고, 로마는 지나치게 관능적인 도시, 호화로운 도시, 평화로운 도시였습니다. 시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명예에 견주면 관리로서 누릴 수 있는 영달이 참으로 하찮은 것임을 깨달은 오비디우스는 곧 기지(機知 놀음이 통하는 문단으로 진출, 오래지 않아 그 방면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때부터 오비디우스는 풍족한 유산, 빛나는 기지, 엄청난 기억력, 반듯한 사교술을 가로세로로 구사하면서 일약 문단과 사교계의 총아가 됩니다.이 시절에 그가 쓴 작품이 저 유명한 『사랑의 기술』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랑에 대한 점잖은 교과서적 가르침을 우롱하면서 <보아 주는 이 없는데 곱게 핀 꽃에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식으로 구체적인 연애 기술, 활달한 사랑법을 가르칩니다. 남성에게는 여성을 꾀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