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남지역 빨치산 투쟁의 근거지가 된 신불산
격동의 해방공간, 그리고 전쟁. 치열한 좌우 대립 속에 수많은 빨치산들이 자신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사실은 역사적으로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빨치산들은 지리산 근방에서 대규모로 활동했지만 그 외에도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했다. 영남 지역에서는 신불산이 그 근거지가 되었다. 해발 1,209미터 신불산 일대는 간월산, 영축산, 재약산, 가지산, 운문산 등 고봉들이 몰려 있어 영남알프스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높은 봉우리와 크고 작은 계곡들은 빨치산 활동에 최적지가 되었다. 이곳은 1948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빨치산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전쟁 발발 이후에는 동해남부유격대 정예부대가 이북에서 내려와서 기존에 존재하던 빨치산들과 합류하여 함께 활동하게 된다.
▶ 일본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양산에서 태어난 구연철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아홉 살 때였다. 일본 나가사키 근처에 하시마라는 섬이 있었는데, 그곳에 무기를 만드는 미쓰비시중공업이 직영 탄광을 운영하고 있었다. 구연철의 아버지는 바로 거기서 탄광노동자로 일을 하였고, 온 가족을 이주시킨 것이다. 양산 들녘의 푸르른 자연을 바라보고 자라던 구연철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이 섬에서 학교를 다니며 7년을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구연철이 고등과 2학년이 되던 1945년 어느 날, 컴컴하던 방 안까지 갑자기 섬광이 번쩍 하는데, 바로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된 것이다. 구연철은 나가사키에 나가 참혹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다. 그리고 8월 말, 가족들과 함께 양산으로 귀향한다.
▶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전쟁과 더불어 입산
귀국한 후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인쇄소에서 일하던 구연철은 해방이 되었지만 여전히 친일, 친미 세력이 득세하는 사회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이후 인쇄노조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49일 동안 감옥에서 호된 곤욕을 치른다. 이후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심해진 예비검속을 피해 고향집으로 돌아왔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신불산에 입산하여 빨치산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