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몰락하는 세상에 대한 경고
위로는 부패한 권력이 음험한 그늘을 드리우고, 아래로는 갖가지 흉악한 범죄가 똬리를 트는 21세기. 평범한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착하기만 한 흥부보다 적당히 잇속을 차릴 줄 아는 놀부가 더 사랑받는 세상이다. 그래서 착한 사람만 손해 보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이에 대해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옙스끼는 《백치》에서 그 착한 사람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그는 한 편지에서 작품에 대한 자신의 의도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완전히 아름다운 사람을 묘사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특히 요즘 세상에서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너무 착한 사람은 세상물정 모르는 ‘백치’이기 쉽다. 그래서 미쉬낀 공작 또한 순수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이 현명한 백치는 추악하고 뻔뻔스러운 인간사회에 대한 저주와 증오에 사로잡힌 박복한 나스따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장군의 긍지 높고 청순한 딸 아글라야가 지닌 영원한 처녀성에 대한 동경 때문에 출구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순결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몰락
똘스또이가‘이 사람은 다이아몬드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몇 천 개의 다이아몬드에 필적한다’고 극찬한 주인공 미쉬낀 공작은 이른바 아름다운 사람이 빠지기 쉬운 군자형 성인과는 거리가 먼, 극도로 순진하고 오히려 언뜻 보기에 백치 같은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따라서 그 인물묘사에는 가장 좋은 의미로의 유머가 흘러넘친다. 마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보고 있는 듯하다. 도스또옙스끼는 미쉬낀 공작을 통해 현대의 기사 돈키호테를 재현하고자 했음이 분명하다. 미쉬낀은 돈키호테와 마찬가지로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정직하고 결백하며, 동정심이 강하다. 그래서 이러한 기질로 인해 몰락하고 만다.
작은 보따리 하나만을 들고 스위스에서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온 미쉬낀 공작 역시 자기가 백치나 다름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나 한결같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