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재난과 ‘더 아름다운 세상’의 길
1 아시아적 폐허는 존재하는가
2 천붕지해(天崩地解: 명청 교체기와 유민 화가들의 국망(國亡 경험
3 선조(宣祖의 위기의식과 임진왜란, 그리고 그림 속 주인공이 된 여성과 하층민
4 재난이 만든 아름다움, 반 시게루(坂茂의 재난 건축
5 고통의 아포리아, 세상은 당신의 어둠을 회피한다: 재난(고통은 어떻게 인간을 미적 주체로 재구성하는가
6 기후 위기와 생태적 슬픔(ecological grief: 수치와 희망의 세계
7 위기의 시대, 북한의 문예 정책과 ‘웃음’의 정치
8 카디, 죽지 않고 살아 있(남는 아름다움
주
참고문헌
필자 소개
고통에 공감하는 예술가의 시선
먼저 〈아시아적 폐허는 존재하는가〉는 화가 모토다 히사하루(元田久治를 다루었는데, 그는 폐허를 소재로 삼는 예술가다. 현재 번성 중인 일본의 ‘명소’들이 폐허가 된 광경을 구상한 그의 예술세계에는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재난 경험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복합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서구 예술에서는 폐허를 숭배하고 폐허를 통해 전통과 미적 기준을 상기하고 연속성과 지속성을 강조하려는 인식이 강하게 나타나는 데 비해, 동아시아 예술에서는 폐허를 통해 인생과 권력의 무상함과 애수, 비애와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모토다는 서구 경향에서 촉발되어 폐허 묘사를 시작했지만, 자연에 빗대는 동양적 폐허 표현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의 작품이 일본에서 반향이 큰 것은 ‘폐허의 미’에 대한 공감의 증거일 것이다.
이어지는 〈천붕지해(天崩地解: 명청 교체기와 유민 화가들의 국망(國亡 경험〉은 유교적 덕목인 충을 마음속에 남은 명나라에 투영해 위기감을 극복하려는 그들의 작품 세계에서 ‘비장의 미’의 진수를 짚어냈다. 한족의 명조가 만주족 청조로 대체된 정치적 사건은 당시 동아시아 엘리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명나라의 유민 화가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대참변의 위기를 고통스럽게 겪고 왕조 교체기에 벌어진 처참한 광경을 화폭에 옮기면서, 유교적 규범의 핵심인 충(忠을 그림에 표현했다.
임진왜란이라는 참변을 겪고 난 조선 회화에서도 ‘충’으로 상승되는 ‘효(孝’의 가치가 강조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후궁과 규방 그리고 기녀나 의녀 같은 여성, 가마꾼과 마부 같은 하층민을 새롭게 표상하는 그림 제재의 전환, 시각적 사고의 전환이 엿보인다. 이러한 미의 전환은 멸시받던 이들에 대해 선조가 지녔던 특별한 공감대에 힘입은 것임을 〈선조(宣祖의 위기의식과 임진왜란, 그리고 그림 속 주인공이 된 여성과 하층민〉이 깨우쳐 준다. 전쟁으로 땅에 떨어진 국왕과 지배층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정치 위기를 넘어서고자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