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부 이토록 내 마음을 아는 고전이라면
오늘도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내 편이 없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하루치의 독서와 사유가 주는 기쁨
내면의 불안에게
풍요롭고 안온한 삶을 원한다면
내가 가진 것이 보잘것없어 보여도
마음의 거리두기
시간과 공간도 소유하지 않는 마음
행복으로 다가가는 비결
오십견이라는 스승
중용을 지키는 삶
멈추고 화해하고 돌아보고
‘척’하는 자들에게
2부 고전으로 단단해지는 나
어찌할 수 없는 진퇴 앞에 있다면
상처받지 않는 인간관계는 없다
어쩌나 생긴 대로 살아야지!
존중받고 싶다면
부모가 되어보니
읽고 쓸 자유를 누리며
성장하는 사람의 비밀
굳이 우악스럽게 살지 않아도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고 있다면
무엇이 나의 참모습인지 고뇌하고 있다면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고 있다면
공감 능력이 부족한 자들에게
승패 끝에 잊지 말아야 할 것
마음이 죽었다는 사람들에게
말뿐인 존중과 배려 대신에
당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라
기껏해야 백년 인생
바로 오늘, 감정을 들여다보는 공부가 필요한 이유
<장자>의 ‘양생주’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지만, 앎은 무한하다.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좇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삶은 유한하지만 공부해야 할 것은 차고 넘친다. 놀랍게도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평생을 걸쳐 다 읽을 수 없는 공부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양생의 관점에서 보자면 책과 골치 아프게 씨름하는 것보다 천수를 누리는 편안한 삶이 바람직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두려움으로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겨 산다. 지식을 온전히 채운다고 우주의 섭리까지 취할 수 없다. 우주의 섭리 앞에 겸손할 것, 그래서 조금이나마 배우기 위해 노력할 것을 역설하여 강조한 것이다.
더욱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공부해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공부를 하는 우리에게, 분명 지식만이 앎의 전부가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알아야 충분한 공부다. 현대인은 하루 끝에서 오늘을 돌아보고 마음챙김을 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다이어리를 정성스레 쓰고, 좋은 글을 필사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명상을 하고 사진첩과 메모를 정리하고 따뜻한 차 한 잔으로 하루를 끝맺는 것이다.
그런데 내면과 감정을 돌보는 일은 왜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는 걸까?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아닌, 하루를 시작할 때 ‘오늘 하루도 잘해보자’고 다짐해보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논어로 여는 아침≫의 저자 김훈종이 내일을 기약하지 않고, 오늘 바로 “이 현재를 잘 살아보자”며 외친 까닭이다.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침 고전古典
사람은 밤에 잠을 자면서 그날의 정보와 기억을 머릿속에 담는다. 늦은 밤 공부는 자신이 확보한 공부 시간이 많다는 생각으로 쓸데없는 시간만 잡아먹기 일쑤다. 오히려, 충분한 수면을 취해준 다음 날 공부가 효율적이다. 다시 말해,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하는 아침 공부가 좋다.
≪논어로 여는 아침≫은 저자 김훈종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