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의 내력과 일중 중부와 함께 지내던 오현 _김통년
김충현 한문서예의 시기별 변천사 _쑤다오위(蘇道玉
조선 500년의 꽃, 일중의 한글서예로 피어나다 _정복동
일중의 국전작품, 국한문 병진으로 창신의 서예를 열다 _김수천
일중서예의 선문, 균형과 조화의 응축 _문희순
안동김문의 문예의식과 김충현 _이종호
문현·충현·창현·응현·정현 5형제의 서예, 20세기 문인서예를 꽃피우다 _배옥영
김충현 금석문과 현판의 문화사적 위상 _정현숙
책 속으로
14대조 청음 김상헌으로부터 시작하여 12대조 김수증과 김수항, 그리고 육창(六昌으로 이어지는 그의 조상은 조선조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문화예술의 표상이었다. 거기에 일제강점기 증조부 김석진과 조부 김영한이 물려준 항일정신은 김충현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라 하겠으며, 그가 탄생하고 자라난 창녕위궁과 관련한 이야기는 김충현 서예의 심층적인 측면을 이해하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국문학자 위당 정인보는 김충현에게 종요(鍾繇와 왕희지(王羲之보다 조상의 정신을 본받으라고 당부할 정도로 그의 조상은 후손들에게 값진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었다. _8쪽
김충현은 시인의 기질이 충만한 서예가이자 서예교육자이다. 손재형과 함께 국전에 서예부를 창립했으며, 국전 창립 때부터 국전이 폐지될 때까지 대부분 출품할 정도로 국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 그는 국한문의 다양한 작품으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다. 특히 그의 예서는 한국 서단에 예서의 풍기를 일으켰으며, 유려하면서 힘찬 그의 예서는 ‘일중체’라 부를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동시에 한글궁체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판본체의 새로운 모습인 고체를 창작하는 등 한글 교육과 한글서예 창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고체의 창조로 한글서예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으며, 고체와 예서를 혼용한 전에 없던 창작으로 한국 서예가 나아갈 방향을 크게 열어주었다. 결국 김충현의 국한문 혼용 서예는 한국 서예의 외연을 크게 확장시켜 주었다. _81쪽
김충현은 평생 비첩을 결합하여 정통에서 길을 찾고자 했다. ‘구운求韻·구박求樸·구취求趣·구일求逸’을 추구하여 마침내 원융의 담박한 서예세계로 들어섰으며, 여러 서체와 서풍을 하나로 융합하여 새로운 조형을 탄생시켰다. 이것이 일중서예의 ‘신융합’이며, 이런 성취가 있기에 그의 글씨를 ‘일중체’라 부른다. 일중이 새로운 조형을 만드는 중요한 요체인 ‘신융합’은 독창적인 작품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서예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_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