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책, 한 권의 버겁지만 귀한 타인
1 사랑의 기억
고슴도치의 증오와 사랑 · 서보 머그더, 『도어』
희망은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 시어도어 젤딘, 『인간의 내밀한 역사』
몸속 깊숙이 침투한 에로틱한 사랑이 공적 감정이 되기까지 · 마사 C. 누스바움, 『감정의 격동: 사랑의 등정』
겉돌지 않고 낙관 혹은 비관 쪽으로 · 데버라 리비, 『살림 비용』
핏빛 모국어를 버리기 · 아글라야 페터라니,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2 시간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우리는 풍경 속에 위치하고 시간 속에 놓인다 · 캐슬린 제이미, 『시선들』
너희는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아야 해 · 리처드 파워스, 『오버스토리』
어떤 몸과 돌이 될 것인가 · 리처드 세넷, 『살과 돌』
산책하는 걸음 하나하나가 시 쓰기 · 한정원, 『시와 산책』
인간을 부러뜨려 공동묘지로 돌려보내는 전쟁의 시간들 ·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들』
판자를 붙잡은 난파자, 물속으로 한발 들어가는 구경꾼 · 한스 블루멘베르크, 『난파선과 구경꾼』
3 타자와 기억
먼지나 공기처럼 부유하는 아름다운 소우주들 ·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작은 우주들』
얕은 관계가 망치는 삶과 기억 · 윌리엄 트레버, 『펠리시아의 여정』
자기 비하에 빠지는 책 읽기 ·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여행에서 모은 잡동사니, 천 조각, 폐지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4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기
질서와 이름 속에 포함되지 않는 빛나는 존재 ·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잃으면 넓어진다 ·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내게 없는 몸을 향한 읽기와 동경 · 얀 그루에, 『우리의 사이와 차이』
짐을 꾸려 우리 최악의 자아를 떠나 · 레슬리 제이미슨, 『공감 연습』
자아를 치유하는 형식 되찾기 · 한병철, 『리추얼의 종말』
자기 자신에서 가장 멀어지고 타자화되는 질병 · 앤 보이어, 『언다잉』
5 늙어간다
당신도 나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책 읽기
『살아가는 책』에서 저자는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예기치 못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책상에 앉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모래바람을 맞으며 달을 보았고, 말 울음소리를 들”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오랜 편집자 생활로 진중한 읽기가 몸에 밴 만큼 책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낯선 세계를 기꺼이 헤매고 다니며 타자들과 조우한다. 생경한 삶과 이야기를 제 것처럼 느끼며 익숙한 자신과 조금씩 멀어지기를 시도한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분명히 장소성을 의미해 내가 있는 이곳의 바깥을 탐험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처음 만난 타인들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잠시라도 타인의 심신을 걸쳐볼 수 있”게 된다. 거기서 잃는 것은 ‘과거의 나’다. 길을 잃으면 나를 잃고 (그런 두려운 처벌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얻는다. 길을 잃으면 들어갔던 입구로 도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구로 빠져나오게 된다. _140쪽
저자는 기존의 ‘나’를 벗어나 새로이 자신을 발명해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글 속에서 마주치는 인물과 상황에 오래 머물며 섣불리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으려 애쓴다. “좋은 것은 기존의 것이 부서질 때 얻어질 수 있다”는 말을 심도 있는 독서로 실천하는 것이다.
작품과 현실을 잇는 중간자로서의 글쓰기
『살아가는 책』에서 언급되는 책 속 이야기는 저자가 직접 경험했거나 인터뷰를 통해 들었던 사연들을 불러일으킨다. 데버라 리비의 『살림 비용』에서 쉰이 넘는 나이에 결혼을 끝내고 홀로 서기를 시작한 화자를 보며 저자는 이혼한 지인들이 가부장제적 사회에서 겪는 다사다난한 부침을 상기한다. 아글라야 페터라니의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에서 친족 성폭력에 노출된 아이를 보면서는 “23년간 하루도 예외 없이 지옥에서 살았어요”라고 고백하던 스물네 살의 예원을 떠올린다. 이렇듯 저자는 책을 읽는 도중에 끊임없이 현실의 문제들이 문장 사이로 틈입해오는 경험을 한다. 자신의 고통을 책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