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을 옮기며
1. 뭔가 수상한 재개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 달동네와 10명의 건축가
2. 그때 그 마을의 기억
여기는 민속촌이 아닌데 | ‘터 무늬’ 있는 백사마을
3. 진짜 사람이 남는 마을로
무엇이 공동체를 만들까 | 20퍼센트만 남는 재개발 | 반半이라도 남는다는 꿈
| 다시 정산하는 재개발 비용
(백사마을의 시간 버스가 하루 두 번만 다니던 곳
4. 골목이 회오리치는 동네
토막촌, 판자촌, 빌라촌 | 똥냄새 난다는데 왜 아직도
5. 덩칫값을 못 하는 아이러니
헌 집 줬는데 새집이 없다니 | 재개발 셈법이 말하지 않는 것
6.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폐허에서 나타난 사람들 | 노인에게 하지 않은 질문
7. 신림 반지하와 종로 고시원
반지하라는 합리적 선택 | 고시원이라는 합리적 선택
8. 현실의 ‘홍반장’을 찾아서
다산동의 골목대장들 | ‘사람’으로 만든 사회안전망
9. 사람이 스무 살에 죽는다면
마을이 요절하는 사회 | 위험에 처한 산업 생태계
(창신동의 시간 1000개의 공장이 돌아가는 곳
10. “떠나지 않게만 해달라”
400일 넘게 천막을 쳤건만 | 메뚜기 신세가 된 상인들 | 청계천의 산업 생태계
| 청계천을 맴도는 사람들
11. 여기는 백지가 아닌데
한 눈을 감은 속도전의 결말 | 늘 뒷전인 산업 생태계
(청계천의 시간 ‘주상복합 하꼬방’이 있던 곳
12. 유산을 망각한 도시
자초한 문화유산의 위기 | 파리·뉴욕·도쿄에서 말하지 않는 것
13. ‘힙지로’의 교훈
낡은 공간의 힘 | 산업 생태계의 계승자들 | 긍정할 수만은 없는 변화
(세운상가의 시간 ‘종삼’이라 불리던 곳
발걸음을 마치며
참고문헌
뭔가 수상한 재개발
서울의 가장자리를 긋는 불암산 능선을 따라 남쪽 끝자락으로 내려오면, 서쪽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이 하나 있다. 이 마을의 이름은 ‘백사마을’이다. 마을 입구 주소인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에서 번지수를 딴 이름이라는 말도 있고, ‘허허벌판에 세운 마을’이라는 뜻에서 ‘백사白沙(흰 모래밭’를 붙였다는 말도 있다. 백사마을은 언제인가부터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기 시작하더니 겨울철을 앞두고 TV 뉴스에 색색의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연탄을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끄는 장면이 나오면 그 배경은 어김없이 백사마을이다.
이 백사마을이 곧 사라진다. 마을의 땅을 가진 사람들은 1990년대 초부터 마을을 재개발하길 바랐고, 마침내 2021년 2월 노원구청이 사업시행계획을 인가했다. 그런데 재개발 후 백사마을 전경을 담은 조감도를 보면 뭔가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고층 아파트가 있어야 할 자리 같은데, 아주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룬다. 알고 보니, 백사마을의 땅을 7:3으로 갈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재개발하는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이다.
서울시와 건축가들은 백사마을의 지형, 터, 골목길이 ‘순전히 사람의 손에 의해 일군 것’일 뿐만 아니라, ‘대면 공동체를 추동해왔던 건축적 장치’이기 때문에 보전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보자. 백사마을 지형은 북사면(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경사지으로 마을의 북쪽이 가장 낮고 남쪽이 가장 높다. 그래서 초입부터 한 채씩 집이 들어서면서 마을을 이뤘다. 철수네가 가장 지대가 낮은 자리에 집을 지었다면, 그다음에 마을에 들어온 영희네는 철수네 집보다는 한층 높은 땅에 집을 짓게 된다.
이때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지형이 높은 쪽이 남향이므로, 나중에 지은 영희네 집이 먼저 지은 철수네 집에 드는 햇볕을 가릴 수 있다. 영희네가 집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철수네 일조권이 달린 것. 그런데 백사마을에서는 집이 한 채씩 늘어날 때 그전에 있던 집의 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