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더 빨리 가려고 한 순간
어둠으로 변해 버린 찬란했던 시절의 꿈
원래 수프를 만들 때마다 아저씨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왕과 왕비, 심지어 올림포스의 신들까지 아저씨의 수프 맛에 감탄했다. 레프론 아저씨는 맛있는 수프를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커다란 수프 공장을 만들어 밤낮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꿈속에서 왕도 신도 모두 사라지고 식탐 가득한 먹보 괴물들만 남게 되었다. 나중에는 어둠만 남았다. 꿈은 현실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곧 수프 맛이 변했다고 수군댔다. 아저씨의 멋진 외모도 못생기게 변했다. 고민 끝에 아저씨는 수프 공장 문을 닫기로 한다. 그 대신 일 년에 딱 한 번, 가을의 첫날에 아무도 모르게 수프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중요한 건 수프를 대하는 태도.
사랑과 정성으로 수프를 되살리다
공장에서 만든 수프는 왜 갈수록 맛이 없었을까? 아저씨가 맛있는 수프를 만드는 일보다 수프를 어디에 얼마나 팔 것인지 더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저씨만의 비법인 정성과 사랑이 수프 속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레프론 씨의 수프>는 더 많이, 더 빨리 가지려고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여 준다. 수프 통조림을 욕심껏 생산해낼 수는 있었지만 그 순간부터 수프 맛은 서서히 변한다. 일에 치인 채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저씨의 꿈도 더불어 변질된다. 처음엔 소소한 배송 실수로 시작해 급기야 손주 토끼가 수프 냄비에 빠져 죽는 꿈까지 꾼다. 어둠 가득한 악몽에서 간신히 깨어난 아저씨의 모습은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과 비슷하다. 다행히 아저씨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 다른 길을 선택한다.
수프를 만드는 최고의 비법인 정성과 사랑은 세상을 대하는 기본적인 삶의 태도다. 나 자신을 비롯해, 만나는 사람들, 다루는 물건들 모두 마찬가지다. 혹시 뭐가 부족해서 자꾸만 일을 그르치는지 알 수 없다면 자신을 돌아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