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숲 속을 산책하는 순서
인문의 숲 속으로 들어가며 ― 저기, 사람이 내게 걸어 들어오네
첫 번째 인문의 숲 ― 인문적 통찰을 통한 독립적 주체되기
인문학, 넌 누구냐?
스티브 잡스와 소크라테스
현재를 통찰하는 인문의 더듬이
정치적 판단과 결별하라
내가 동양학을 공부하는 까닭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
이념은 ‘내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다
그 무거운 사명은 누가 주었을까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두 번째 인문의 숲 ― 인간이 그리는 무늬와 마주 서기
우리는 더 행복하고 유연해지고 있는가
요즘 애들은 언제나 버릇없다
인문학은 버릇없어지는 것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고유명사로 돌아오라
세계와 개념, 동사와 명사
존재하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사건이다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다
노자, 현대를 만나는 길
지식은 사건이 남긴 똥이다
인간의 무늬를 대면하라
세 번째 인문의 숲 ― 명사에서 벗어나 동사로 존재하라
지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덕’이란 무엇인가
툭 튀어나오는 마음
하고 싶은 말을 안 할 수 있는 힘
멘토를 죽여라
구체적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진리가 무엇이냐고? 그릇이나 씻어라
동사 속에서 세계와 호흡하라
나를 장례 지내기, 황홀한 삶의 시작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일’을 보라
네 번째 인문의 숲 ―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철학의 시작, 낯설게 하기
타조를 잡는 방법
내 털 한 올이 천하의 이익보다 소중하다
대답만 잘하는 인간은 바보다
자기를 만나는 법
욕망, 장르를 만드는 힘
장르는 나의 이야기에서 흘러나온다
욕망을 욕망하라
명사로는 계란 하나도 깰 수 없다
이성에서 욕망으로, 보편에서 개별로 회귀하라
인문의 숲 속에 머물며 ― 욕망으로 새기는 인간의 무늬
人文, 인간이 그리는 무늬
문(文이란 원래 무늬란 뜻이다. 따라서 인문(人文이란, 인간의 무늬를 말한다. ‘인간의 결’ 또는 ‘인간의 동선’이라 부를 수도 있다. 곧 인문학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을 배우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와 인간의 동선을 알기 위함이다. 과거는 ‘인간의 동선’ 뒤쪽이고 미래는 앞쪽 방향일 뿐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면서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 ‘인간의 무늬’를 가늠하지 않고 가능할까?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교수에 따르면, 인문학은 고매한 이론이나 고급한 교양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인문학 열풍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도 대학 안팎의 연구자들이 아니라 기업인들이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이 움직이는 흐름을 읽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야 성공할 수 있음을 기업인들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앞다투어 말하고 있다.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최진석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상상력이란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의 방향이 어디로 움직일지 꿈꿔 보는 능력이다. 상상은 망상과 다르다. 망상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과 아무런 관계없이 멋대로 하는 생각일 뿐이다. 또한, 창의성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이 어디로 갈지 꿈꿔 보고 또 꿈꿔 보다가 그 나아가는 방향 바로 앞에 점을 찍고 “우뚝!” 서 보는 일이다. 따라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인문의 향기를 피하면 안 된다. 상상력과 창의성을 최대의 핵심 문제로 생각하는 기업에서 인문학을 필요로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인문학 없이 상상력이나 창의성도 없기 때문이다. 인문적 통찰의 힘, 그것은 바로 생존의 무기이다.
정치적 판단과 결별하라
우리가 어떤 사태나 사건을 만났을 때 ‘좋다’ 또는 ‘나쁘다’라는 판단을 한다면, 우리는 그저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일 뿐이다. 인문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