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로 환원되는 세상에서 환원되지 않는 존재들
신조하 작가의 『무뇌 변호사』는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어느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대부분의 인력을 대체한 인공지능부터 인간처럼 행동하고 감각하는 안드로이드, 기계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사이보그까지. 더는 ‘인간’과 ‘기계’만으로 이분화할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데이터와 전기신호로 환원된 세상에서, 마음까지 환원되지는 않은 존재들이 있다. ‘법과 질서’의 김호인 변호사는 태어날 때부터 인공두뇌를 이식받은 사이보그다. 안드로이드를 주로 변호하는 그에게 간혹 변호사로서의 소임이나 신념을 묻는 이들이 있다. 김호인 변호사는 자신이 사이보그이기 때문에 기계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약자’들 편에 선다는 평판 때문에 안드로이드만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김호인 변호사는 인공두뇌 속 해파리를 통한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존중받아 마땅한 이들의 곁에 설 뿐이다. 인간에게 부당한 억압을 받고 무력하게 폐기되는 안드로이드를 변호해 구하는 것. 그것만이 ‘무뇌 변호사’ 김호인의 유일한 소임이자 신념일 것이다.
인간이 창조한 기계의 ‘발전’과 ‘반란’
인간은 필요에 따라 기계를 생산하고 그들에게 의무를 부여하지만, 그들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곧 폐기해버린다. 기계는 유기 생명체와 달리 생존 자체를 최상위 목적에 두지 않기에, 자신이 폐기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살고자 하는 ‘목적’을 갖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지키고 싶은 ‘존재’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생긴다면. 인간은 아니, 그 무엇도 기계의 삶에 대해 쉽게 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강제로 주입된 기억 때문이었으나 한 인간을 위험으로부터 지키려 한 「피 흘리지 않는 제물」의 안드로이드 김유미처럼, 제 주인에게 너무나 복종해 한 몸이 되어버린 「복종하는 뇌」의 로봇들처럼, 육십 년간 한결같이 딸을 키우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각한 「기억과 유전자의 밤」의 오혜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