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아프고 나만 힘들다
그러나 방황의 끝에는 희망의 얼굴이 고개를 내민다
삶은 방황이며 방황은 곧 삶의 일부이다. 어쩌면 삶의 목적은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방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방황하지 않고, 우리는 그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 모든 방황은 새로운 발견의 시작이다. 여기 자신의 존재를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자신을 무엇으로 증명해야 하나 고민하는 주인공이 있다. 그의 이야기로 방황의 문을 열어 본다. 정지아의 「존재의 증명」은 어느 날 갑자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그’를 통해 나는 누구인지,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왜 왔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이 구름에 잠긴 알프스 같았다.”(14쪽 자신의 근처에 있는 물건과 소지품을 통해 자신을 떠올리려 하지만 잘되지 않는 남자, 그러면서도 커피나 커피 잔, 디자인 의자와 소파 등의 취향을 확인해 가며 기억나지 않는 자신에 대해 만족스러워한다. 결국 파출소에서 한차례 소동을 겪은 후 남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찾아간 집에서 ‘그’는 소파에 누워 편한 잠에 빠져든다. “기억은 사라져도 취향은 사라지지 않는다.”(37쪽라고 생각하며. 다음 날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든 아니든, ‘그’에게 나를 증명하는 것은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소현의 「엔터 샌드맨」은 비극적인 폭발 사고로 건물이 무너져 잔해에 깔리면서 친구 ‘은하’는 죽고 자신만 살아남은 ‘지수’의 트라우마와 방황을 그린 이야기이다. 폭발 사고 때 ‘은하’와 이야기를 나누다 먼저 생존해 ‘은하’를 찾아내려던 ‘지훈’은 그 ‘은하’는 죽었으며, 자신이 나중에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은하’가 아니라 ‘지수’임을 알게 된다. 잔해 속에서 구출을 기다리며 둘이, 아니 셋이 불렀던 그 노래, 엔터 샌드맨. ‘지수’와 ‘지훈’은 같은 처지에서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으며 서로의 곁에 있어 준다. 그러나 그것이 함께 나아가는 걸음은 되지 못한다. ‘지수’는 현실을 외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