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끈적이는 방바닥에 귀를 바짝 붙인다. 고롱고로롱고로롱. 물소리보다 노랑이의 배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워터파크의 기다란 미끄럼틀을 떠올린다. 노랑이와 내가 이 아래 하천 바닥을 미끄럼틀 삼아 바다까지 흘러가는 장면. 엄마가 있는 요양병원은 원래 바다가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 그 땅 아래도 바다라면 이대로 거기까지 흘러가 엄마를 보고 오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이모도 함께. 이모도 아직 살아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치고.
―「오르내리」, 28쪽
솨아아,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바람이 분다. 느티나무 이파리가 손을 크게 흔들자 매미가 운다. 할매가 준 화분의 깻잎이 흔들리고 내 등도 순간 선득하다. 이 바람은 곧 계단과 골목을 따라 구석구석 웅크린 집들을 방문할 것이다. 올라가입시다, 사람들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가다가 엄마가 있는 병원 창문에 잠시 기대겠지. 그리고 곧 바다에 닿는다. 올라가자는 인사를 바다에 남기며.
그러면 바다는 오래 기다린 것처럼 바람을 보낼 것이다. 산을 향해 오르는 축축한 짠 바람을. 올라가입시다. 모두의 인사에 대한 대답처럼.
―「오르내리」, 39~40쪽
저, 이래 봬도 구름감상협회 회원입니다. 2004년에 영국에서 만들어진 구름옹호 단체거든요. 우리 협회 선언문에 그런 말이 있어요. 우리는 구름이야말로 대자연의 시이며 최고의 평등주의자라 생각한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파란하늘주의를 만날 때마다 맞서 싸울 것을 맹세한다….
종알종알,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은주는 꿈에 젖어 있는 표정으로 선언문을 암송했다. 수현은 은주가 가리킨 구름을 보며 분명 존재하는데도 결국 없는 것이라면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었다. 아, 그래서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하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뜬구름을 잡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도망자의 마을」, 55~56쪽
휴가를 오기 전에는 아침마다 상상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한숨이 깊어서 지구는 곧 땅이 꺼져 멸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