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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이 그려진 아이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혜주읍 광석동에
살고 있는 진사 안태훈과 부인 조씨 사이에
귀여운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데가 있었다.
기울어?져 가는 나라
안중근이 열여섯 살이 되던 해였다.
그는 김흥섭의 딸 아려라는
처녀와 결혼했다.
그 무렵 나라 안의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을사늑약
나라의 운명이 마치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기만 한 때였다.
청.일 전쟁 이후 우리 나라를 넘보는
외국의 세력은 북쪽의 러시아와
이웃인 일본으로 압축되었다.
민족 의식을 일깨우다
날아 대장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나니
죽어서 어찌 뼈를 선영 아래 묻으리오.
살아서 성공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돌아오지 않으리.
사람이 이르는 곳마다 다 청산이거늘.
하얼빈에서 울린 총성
이튿날 안중근은 동지들의 성원을 받으며
우덕순과 같이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떠났다.
우덕순은 같이 의병 활동을 하던 동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