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장 성채를 찾아서: 지하 감옥의 달걀
2장 이야 계곡: 그림자 예찬
3장 가부키: 소금만이 남는다
4장 미술 컬렉션: 영광 직전의 순간
5장 일본학과 중국학: 하팍스 레고메논
6장 서예: 긴자의 간판
7장 덴만구: 귀신 음악회
8장 트래멀 크로: 버블 시대
9장 교토: 교토는 교토를 싫어한다
10장 나라로 가는 길: 궁극의 사치, 무용無用
11장 나라 외곽 지대: 숨겨진 부처
12장 오사카: 자해공갈단과 가격정탐꾼
13장 문인: 무위
14장 마지막 눈길: 영광 직후의 순간
용어 해설
빈집에서 본 일본
얼룩진 시골과 전봇대의 나라
이 책이 독특한 것은 이방인이 타국을 여행하는 이야기가 아닌, 빈집에 들어가 그곳에 남겨진 몇십 년 몇백 년 전 일본인의 삶을 엿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1970년대에 일본 지방의 집들은 이미 버려지고 있었다. 시골에서의 삶이 전망 없어 불안했던 사람들은 싱크대에는 수저를, 화장실에는 칫솔을 남겨둔 채 급히 터전을 떠났다. 그 덕분에 저자는 쓰루기산에서 시작해 가가와현, 고치현, 도쿠시마현 등에서 백 채쯤 되는 집에 들어가 옛 주인들의 일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점점 전통 가옥에 매료된 그는 빈집을 사자고 결심했지만, 웬만한 곳은 콘크리트와 알루미늄으로 덧대어져 볼품없었고, 10년 넘게 방치된 집들은 바닥이 기울고 있었다.
1973년 1월, 이야 계곡 동쪽에 있는 쓰루이 마을에 갔다. 거기서 18세기에 지어진 집 하나를 발견했는데, 바로 자신이 찾던 집임을 알아차렸다. 17년째 폐허였던 그 집을 사서 6월에 입주한 뒤 치이오리?庵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의 일이다.
대공사와 청소가 시작됐다. 먼지 제거는 보물찾기처럼 흥미로웠다. 집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물건은 1950년대에 조부모와 함께 이 집에 살던 젊은 여성의 일기였다. 거기엔 마을의 궁핍, 어두운 집, 도시에 대한 갈망이 아프게 적혀 있었다. 그러다 일기는 그녀 나이 열여덟 살에 돌연 멈춘다. 알고 보니 그녀는 가출했고, 조부모는 손녀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써서 문에 거꾸로 붙여놨다. 그리고 그 부적은 저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집은 가로 네 칸 세로 여덟 칸의 넓이다. 마루, 툇마루, 침실, 부엌, 작업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집은 숨이 막히도록 어두웠다. 젊은 여자가 도시의 형광등 불빛을 쫓아 가출한 것이 이해될 정도였다. 하지만 미닫이문을 모두 철거하자 어두웠던 그곳은 환히 빛을 머금었다. 저자는 그곳에 앉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를 떠올렸다. 다니자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