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1부 책상의 역사
콜드브루/여밈/물멍/속초 비가悲歌/답을 기대하는 인간/너는 누구인가/논공행상/일인 구급대/월요일/예감/존버 정신/태그호이어/역습/비탈에 선 명품/선풍기 뒤에 있는 것들/책상의 역사/의료봉사/플라뇌르/오지랖/칼국수 수사학
2부 다정과 소란
학을 떼다/퇴고가 최고/기준/웃는 염소/소나기/높이와 깊이/다정과 소란/어제, 진관사/청평호 물빛과 눈빛/선유도공원/다정/시그널/다섯 손가락/안녕/인수인계/장르 통합/전략/칠푼이
3부 안부, 호기심
love, like/안부, 호기심/기억, 추억/예술, 기술/공짜, 무료/해설, 리뷰/매력, 매혹/감성, 감상/포기, 자유/열정, 집착/정서, 서정/차별, 편애/불안, 두려움/강박, 의무/집착, 미련/핑계, 원인/후회, 반성/표현, 설명/죄책감, 수치심
4부 그 시집
『가능주의자』(나희덕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최문자 | 민음사 | 2022년 3월
『그라시재라』(조정 | 이소노미아 | 2022년 6월
『바람 불고 고요한』(김명리 | 문학동네 | 2022년 9월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천수호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심장보다 높이』(신철규 | 창비 | 2022년 4월
『생물학적인 눈물』(이재훈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장석주 | 난다 | 2021년 12월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이병철 | 걷는사람 | 2021년 11월
『색색의 알약들을 모아 저울에 올려놓고』(이지호 | 걷는사람 | 2021년 8월
『우리의 피는 얇아서』(박은영 | 시인의일요일 | 2022년 4월
『창』(성은주 | 시인의일요일 | 2022년 5월
『사랑의 근력』(김안녕 | 걷는사람 | 2021년 11월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이윤학 | 간드레 | 2021년 4월
『여름밤 위원회』(박해람 | 시인의일요일 | 2021년 11월
『나는 입버릇처럼 가게 문을 닫고 열어
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사유로서 유동하는 세계
봄이 다가와 옷장을 정리하며 겨울 외투에 인사를 건넨다. 11월에 다시 꺼내 들 때를 기약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우리 집 선풍기에는 어떤 정령이 깃들어 있나 궁금해하기도 한다. 우리 집이라는 공간에 스민 식구들의 수런거림과 탄식과 애틋함을 선풍기도 집에 들어오는 순간 읽고, 경청했을 것이다. 이런 집이구나, 다른 냉방기가 없으니 고장 나지 말아야겠다면서 다짐했을 테고. 이러한 활유活喩의 세계가 있다고, 그곳은 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사유로서 유동하는 곳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만물을 사람으로 본다거나 사람에 견주어서 표현하는 의인擬人과는 대각선 방향에 있다. 유喩는 깨우침, 끄덕거림의 뜻이고 의擬는 본뜨고 흉내 내는 뜻이라서 격 자체가 다르다.” 단순한 물건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되고 우리는 ‘사용자’가 아닌 ‘관계자’로 거듭나게 된다.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가 새로움을 만들고, 그렇게 생각이 바뀌면 세상은 이미 이전의 세상이 아니다.
세게 당기면 떨어질 것같이 아슬아슬하면서도 단단히 감싸고 자세를 풀지 않는 단추 같은 사람이 좋다. 단추같이 순서가 필요하고 잘못했는데도 바로잡을 기회를 가진 이가 좋다. 헐거운 마음의 단추가 바로 당신이다. (18쪽
책 속에서
산책로에 매화가 있는데 그 아래에 서면 향기에 적셔지는 것만 같았기에 향기는 날아가는 게 아니라 쏟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는 3층에 산다. 창밖 매화 향기가 내게로 솟아오르는 것 같아 누군가에게라도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어림도 없는 망상이지만 천사로 채용된다면 행인들의 슬프고 다정함이 다 보이는 3층에 근무하고 싶다. 슬픈 사람 없도록 하겠다는 게 아니라 다독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소망을 세우고 싶다. (15-16쪽
우리 식구를 길거리에 주저앉게 한 사람이 찾아온 적 있었다. 그해 열다섯에 세상의 참혹을 다 겪었다. 아버지 동업자인 그이의 죄책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