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이능력 시대,
왜 우리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야 하지?
1981년 첫 발견 이후로 인구의 10퍼센트 안팎이 발현해온 ‘이능력’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기저 인지’에 의해 이루어진다. 통계에 따르면 발현자 중 30퍼센트는 자발적인 정기 검사와 등록 갱신을 요구받는 ‘고발현도’ 능력을, 그중 약 7퍼센트는 “한 개 이상의 도시에 기능 정지 혹은 그에 준하는 인명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미르’의 능력은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배해 열에너지를 조작하는 것. “걸어다니는 재난”에 가까운 자신의 이능력이 “무작위의 행운이 아닌 불공평한 불운”이라는 사실을 매 순간 실감한다.
이 뒤틀린 힘은 수시로 방향을 틀고 사방으로 작용한다. 현실에서 이것은 “21세기 이전의 슈퍼히어로 영화” 속 선망의 결정체 같은 것과 거리가 멀다. 발현자와의 혈액 간 감염에 노출되는 즉시 예정된 죽음을 야기하는 ‘교란’은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잔흔을 남겼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르’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물음을 수없이 되뇌인다. “왜 우리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야 하지?” 우리는 “희생자의 선별엔 인과가 없었지만 사고의 발생엔 인과가 있었다”는 문장 앞에서 잠시간 숨을 고를 수밖에 없다.
“삶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건,
죽음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돌이킬 수 없는 듯 보이는 세계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10년 차 친구 사이의 흔한 장난”을 치며 삼엄하게 통제된 범죄 현장 사이를 지나는 ‘미르’와 ‘건’의 뒷모습처럼 여기에는 일상이 있다. 어느 날 폭발물을 실은 채 학교를 덮치도록 설계된 이능범죄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던 ‘미르’가 상처를 입고, 그를 구하기 위해 ‘건’이 망설임 없이 달려들기 전까지. 두 사람의 혈액이 닿아 ‘건’이 교란 판정을 받기 전까지.
그날 이후로 ‘미르’가 삶을 송두리째 틀어 향한 곳은 ‘RIMOS.’ 국내에서 등록 점유율이 가장 높은 이능력 연구기관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교란 연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