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삶의 뿌리를 앗아 간 걸 보았기에
조카를 ‘무난한 품종’으로 키우려 했다
주인공에게는 조카가 하나 있다. 6·25 전쟁 때 세상을 떠난 오빠가 남긴 조카 ‘훈이’다. 부모 없이 자라는 조카를 안타까워하며 주인공은 어머니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훈이를 자기 자식처럼 아끼며 돌본다. 훈이가 허황된 꿈을 좇거나 사상에 물들지 않기를, 실패를 겪지 않고 평범한 중산층으로 자라기를 바라기에 훈이의 진로와 인생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훈아, 너희 담임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너는 인문계보다는 이공계가 더 적성에 맞는대. (…… 넌 큰 기업체에 취직해서 착실하게 일해서 돈도 모으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서 살림 재미도 보고 재산도 늘리고, 그러고 살아야 돼.” (33면
하지만 주인공의 바람과 달리 훈이는 자꾸만 다른 길을 선택하려 한다. 늘 속마음을 알 수 없었고 변변한 직장을 가져 본 적 없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닮으려는 듯한 모습에 주인공은 초조해한다. 결국 훈이는 주인공의 설득대로 이과에 진학해 공대를 졸업하지만, 이후의 삶은 순탄치 않다. 훈이가 안정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주인공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니, 훈이가 정말로 원하는 자기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카메라의 삶’과 ‘워커의 삶’
어떤 삶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주인공이 훈이에게 바라는 것은 대기업에 취직해 주말에는 식구들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놀러 나가는, 안정되고 평범한 삶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기대와 달리 훈이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취업은 쉽지 않고, 겨우 한 자리를 얻어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 나간 훈이는 낮은 임금과 잦은 야근에 힘겨워한다. 그런 훈이의 모습을 보며 주인공은 이 땅이 여전히 삶을 일구기 힘든 곳임을 실감한다.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 땅 어드메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
그러나 아직도 얼마나 뿌리내리기 힘든 고장인가. (83면
6·25 전쟁 이후 한국은 전쟁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할 시간도 없이 반공주의와 성장 만